이제 가을도 간다. 오늘 모처럼 겨울을 부르는 단비가 내리더니 꽤 쌀쌀해졌다. 감기도 들은대다 목소리까지 잠겨 수업내내 힘들었다. 이제 방학은 한 달도 남지 않았고, 집도 다 지어져 가는데, 한 달 뒤면 이사도 가야 한다. 겨울방학 내내 연수진행에 절반을 쏟아 부어야 하는데....... 김해를 떠나는 일도 그리 녹록치 않다. 언제나 늘 난 이렇게 바쁘게 살아왔다. 쉬고 있어도 쉬는 게 아니었다. 내년에는 달라질까?
가을을 보내며 나는 아이들과 재미도 있었지만, 쓸쓸하게 아이들은 모르지만 나는 쓸쓸하게 보냈다. 밝게 웃는 녀석들, 나를 늘 안아주는 서영이, 내 손잡겠다고 다투는 몇몇 녀석들, 내 주변을 왔다갔다 맴도는 녀석들을 바라보노라면 다시는 보지 못할 이 아이들과 헤어질 생각을 먼저 하게 된다. 이게 아이들때문인지, 경남을 떠나야 하는 알지 못할 상실감과 두려움때문인지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요즘 알게 모르게 난 우울하다.
11월 초 가을 산행이후로 이 달 내내 즐거운 생활 교과와 슬기로운 생활 교과는 가을을 다루고 있었다. 그만큼 낙엽은 늘 아이들 활동의 주요한 도구이자 장난감이었다. 지지난 주에는 아이들 사물함에 낙엽을 붙여 교실 분위기도 한 번 바꿔 보았다. 아이들은 만들기를 좋아한다. 좀 더 계획적으로 풍부한 자료들만 아이들 손에 쥐어진다면 우리 아이들은 엄청한 창의력으로 놀라운 작품을 만들어낼 것만 같다. 늘 부족한 내용으로 수업에 임하는 요즘 내 모습이 이따금 싫지만, 아이들과 함께 노는 수업은 우울한 나를 즐겁게 하기에 충분하다. 잠시라도 말이다. 온 교실을 신나게 돌아다니며 낙엽을 붙여대던 아이들은 우리 교실을 가을냄새 질펀하게 풍기는 곳으로 만들어 버렸다.
지난 주에는 치자염색도 해 보았다. 슬기로운 생활 시간에 열매와 씨를 배우는데 열매와 씨라는 것이 주로 먹는 얘기로 흐르는 경우가 많았다. 덕분에 과일을 풍족하게 먹는 시간도 있었지만, 열매로 할 수 있는 다른 일도 충분히 찾아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 가운데 하나, 열매로 할 수 있는 염색공부를 제안하기로 했다. 1학기때 황토염색 경험이 있던 아이들은 새로운 염색활동에 기대가 컸다. 황토염색과 달리 아이들이 직접 참여하는 과정이 적은 터라 1학기처럼 신나 하지는 않았다.
치자열매를 하루 전에 미지근한 물에 불려 다음날 세배로 물을 붓고 1시간정도 끓이는 작업을 먼저 했다. 그 뒤로 30분동안 아이들이 직접 자기 손수건을 치잣를 우려낸 물에 넣었다. 손수건이 치자 물 사이로 잠기는 게 마냥 신기한 아이들 얼굴만 봐도 기분이 좋아진다. 30분 뒤에는 식초로 매염한 물에 또 30분 담갔다가 아이들에게 맑은 물이 나올 때까지 헹구라고 했다. 찬물에 손이 시렸지만, 아이들은 신나게 헹구도 헹궜다. 하루동안 치자로 물들인 손수건을 말린뒤 다리미로 다린 다음 열매가 달린 나무 그림이 그려진 도장을 찍어주었다. 오늘 노랗게 물들은 손수건을 들어 보이며 해맑게 웃는 아이들이 참으로 예뻤다.
이제 가을도 지나고 겨울은 오는데, 나라 경제는 힘들어지고 서민들의 주름살도 그만큼 깊어져 보여 마음이 불편하다. 세상은 이렇게 힘들어져만 가는데, 일제고사에다 국제중학교에다 영어수업시간 늘이겠다고 난리고 전교조를 못잡아먹어 난리치는 극우보수주의자들은 이제 교과서마저 자기들 입맛대로 만들려 한다. 이래저래 마음만 불편한데, 할 일은 널려 있고 힘을 모아야 할 사람들은 제각각 다른 곳을 바라보는 듯 하다. 다시 눈을 돌려 아이들을 바라본다. 애써 웃음을 지어 본다. 가을도 가고 겨울은 오는데..... 한 숨 나는 일만 가득하니, 올 겨울은 무지 추울 것만 같다. 갑자기 이원수선생님 시, 백창우 곡의 '겨울대장'이라는 노래의 후렴구가 생각난다. 지난 주 우리 아이들과 신나게 불렀는데, 이 노래를 부르면 괜히 힘이 난다. 그래, 힘 좀 내 볼까나.
"하얀 눈아, 찬 바람아! 거기 있거라. 멋쟁이 겨울대장 내가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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