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부터 우리 반은 빼빼로 데이가 아닌 젓가락의 날, 연필깎기대회의 날로 보내기로 했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 반 아이들 오늘 하루 내내 빼빼로와 전혀 관계없이 하루를 보냈다. 오히려 연필깎기대회에서 내가 어떻게 연필을 잘 깎을 지, 젓가락질을 잘 해서 꼭 상을 타야지 하는 마음들만 보였다.
특별활동을 시작한 3교시에 연필깎기대회를 먼저 열었다. 3주 전부터 조금씩 연습을 시키고 가르쳤지만, 여전히 아이들에게 연필깎기란 쉬운 일이 아닌 듯 했다. 기다랗던 연필을 몽당연필로 만들어 버린 아이가 있는가 하면, 연필로 조각작품을 만든 아이들이 줄지어 나오는데, 웃음이 먼저 났다. 아이들의 진지함과는 다르게 나오는 작품들이 어찌나 귀엽던지. 동무들의 작품에 스티커를 붙이며 상점을 주는 일까지 아이들은 꽤나 진지하게 연필깎기대회에 참여를 하였다. 다음 달에 한 번 더 할 터이니 연습을 더 많이 하라 했더니 "야~"한다. 역시 아이들이다.
4교시에는 지난 달부터 가르쳤던 젓가락질로 우드락 조각 옮기기 대회를 열었다. 정확한 젓가락질로만 우드락 조각을 옮길 수 있었던 터라 아이들은 나름 애를 썼다. 서른 두 명 가운데 두 명만 제대로 젓가락질을 할 정도로 우리 반 아이들의 수저 사용법은 엉망이었다. 심지어 숟가락도 주먹을 쥐듯이 잡아 밥을 먹는 아이들이 열 명 가까이 됐다. 집에서 부모님이 뭐라 안 하시냐 물으면 뭐라 안 한다는 말이 되돌아 올 정도로 밥상머리 교육이 잘 되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지난 10월부터 젓가락질을 조금씩 가르쳐 왔다. 이제는 대부분 아이들이 흉내는 내고 절반 정도의 아이들은 젓가락질을 제대로 해서 음식을 먹기도 한다. 아직 습관이 안된 아이들은 여전히 힘들어 하지만,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이제는 수저사용법까지 학교에서 가르쳐야 될 정도니 참으로 걱정이다. 아무튼 오늘 대회를 계기로 아이들은 좀 더 정확한 수저사용법에 관심을 높여갔다. 다음 달에 한 번 더 한다니, 또 다시 "야~"하는 함성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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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과후에 우리 반 아이들이 교실에 남아있을 때, 갑자기 이제는 6학년이 된 4학년 시절 우리반 아이가 문을 열고 들어오더니 빼빼로를 건네고 간다. 잊지 않고 찾아주는 아이에게 빼빼로 데이를 챙겨주는 것에 대해 딴죽을 걸 생각은 없었다. 고맙게 받았다. 그러자 우리반 녀석들 왜 받느냐고 난리다. 이제는 6학년이 된 아이가 선생님 생각이 나서 챙겨준 선물이니 받는 거라고 하니 영 마뜩치 않는 표정들이었다. 그런데, 빼빼로 과자 상자에 어설프게 붙여 놓은 쪽지글이 마음 한 켠을 따뜻하게 만들지 않는가? 그 쪽지에는 예전의 젓가락 날이 그립다는 짧은 글이 적혀 있었다. 나와 지냈던 지난 날을 그리워 하고 잊지 않는 아이가 있다는 게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앞으로 내가 교사로 살아갈 힘은 이 아이들에게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내년 이 학교를 떠나고 다시는 그리운 아이들을 보지 못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또 울컥했다. 요즘 내가 부쩍 이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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