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를 떠나 우리 식구가 살 집 지어 놓은 금산에 온 지도 이제 열흘이다. 지난 해 24일 금산에 온 뒤로 단 하루도 편안하게 아무 일도 안 하고 쉰 적이 없었다. 아무렇게나 흐뜨러 놓은 이삿짐을 정리하는 데만 꼬박 이틀이 거렸다. 우리 집에 가장 큰 재산이자 짐인 책은 정리도 못했는데도 그랬다. 24일 개통되리라 생각했던 인터넷과 전화는 이제 막 마을이 들어선 지라 우리 집까지 케이블이 들어오기엔 거리가 있어 일정한 금액을 지불하고 다섯개의 전주를 설치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우리 식구는 어쩔 수 없이 지난 열흘 동안 세상과 좀 더 거리를 두고 살 수 밖에 없었다. 급하게 인터넷을 써야 할 일이 생기면 언제나 열린 금산간디 윗학교(이곳에서는 고등학교를 이렇게 부른다. 중학교는 아래학교라 한다. 학교가 산 위에 있느냐 아니냐에 따라 붙임 이름이다)에 가서 선생님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써야 했다. 며칠 그렇게 하다 보니 귀찮다기보다 오히려 재미도 솔솔했다. 텔레비전은 라디오로 대신했다.
며칠 간은 금산읍과 대전을 돌며 필요한 물건과 식재료를 사다 날랐다. 그 뒤로 집 보강공사와 마무리 점검에 나흘을 보냈다. 졸지에 일꾼들 뒷수발을 해야하는 아내는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시집살이 해 보는 것 같다며 힘들어 했고, 나는 이쪽저쪽 쫓아다니며 공사 뒷정리 감독(?)과 행정적인 일 처리를 해야 했다. 정말 정신이 없었다. 그렇게 세상과 단절된 채 일주일이 지나면서 겨우 겨우 12월 31일에 인터넷과 전화가 개통이 됐다. 세상에 소식을 전하고 연말을 뜻깊게 보내고도 싶었지만, 어머님과 동생들이 찾아와 대접한다고 또 그렇게 하루를 보냈다. 오늘은 처가댁 식구들이 찾아온다고 한다. 정말 정신없는 열흘이 지나가고 있다. 그동안 세상에는 참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언론노조 파업, 보신각 앞에서 벌어진 어이없는 노란풍선 사건에 이르기까지 세상이 역주행을 하는 모습을 그저 먼 산 보듯 지켜보기만 하는 내 모습을 보며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이런 시골에 살면, 더더욱 자연스레 세상을 지켜보는 삶을 살지도 모른다는 씁쓸함이 느껴졌다. 그러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몸을 움직이며 공부하고 사람들을 만나며 나 스스로 대안적인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지난 열흘동안 바쁘게 살면서도 틈틈이 이런저런 경험을 했다. 도시 아파트에 살았으면 겪지 않을 일들을 경험하며 부지런히 몸을 놀렸다. 이제 갓 열흘이 지났는데도 새로운 생각들과 삶들이 조금씩 내 몸 속으로 들어오는 것 같다. 지난 열흘동안 내가 태어나서 처음 해 본 일들과 사진 몇 장을 쭉 늘어 놔 보는 것으로 새해 인사를 마무리 하고자 한다. 나를 아는 모든 이들이여~ 역주행하는 세상 속에서도 자기 뜻과 꿈 포기하지 마시고 꿋꿋하게 나가시라! 혼자가 아니라, 함께라면 더욱 좋다.
1. 벽난로에 불붙이기
2. 맨 손으로 벽난로 속 청소하다 손가락 데이기
3. 집 짓는 인부들과 나흘간 함께 숙박하며 뒷수발 들기 - 일하는 사람들에 대해 더욱 존경하게 됨.
4. 장작 나르기
5. 종이 함부로 버리지 않기
6. 서슴없이 이웃들 찾아가 인사 나누고 정 나누기
7. 아이들 스스로 기획한 간디학교 졸업식 풍경 보기 - 무척 감동받은 장면들이 많았음.
8. 삽질하기
9. 내가 살고 있는 남이면 사무소 근처에서 자장면 먹기
10. 떠나는 인부들이 고맙다며 답례로 읍내에서 사준 피자 먹기
11. 뒤뜰 청소하기
12. 눈 치우기
13. 양희규교장선생님과 얘기 나누기
14. 집안 구석구석 청소하기
15. 세탁소 찾아가 세탁물 찾아오기
16. 쓰레기 버릴 곳을 못찾아 해매기
17. 눈오는 도로 운전하기
18. 읍내 나갈 때 태워달라며 손드는 동네 할머님 모시기
19. 텔레비전과 신문 없이 살기
20. 인터넷과 전화 없이 살기
21. 라디오 즐기기(아침엔 여성시대, 낮에는 라디오시대, 밤에는 이외수프로)
22. 이웃 연영이네에서 보내 준 수제 햄 먹기
멀리서 바라본 우리 집(왼쪽)과 간디학교에 도움을 줄 기숙사(오른쪽)
금산 간디학교 졸업식 풍경1 - 아이들과 교사, 학부모가 함께 어우러진 아이들 스스로 기획한 잔치였다.
간디학교 졸업식 풍경 2 - 아이와 부모가 함께 나와 지난 3년을 회고하며 떠나는 아쉬움을 나누는 자리
눈에 묻힌 실내화
눈 덮인 데크
눈으로 뒤덮인 집 앞 마당
완성된 우리 집 모습 풍경
옆 집 마당에서 찍어 본 우리 집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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