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산 반곡초등학교 6학년 우리반 열네 명 아이들과 처음 만나 찍은 사진 한 장
오늘 아침 아내와 나(둘 다 논산 양촌면에 함께 발령을 받음)는 아침 일찍 서둘러 학교로 길을 나섰다. 차로 한 시간이 걸리는 먼 길이지만, 설렘과 긴장이 섞인 탓인지 우리 둘은 대화도 거의 나누지 않은채 멍하니 논산의 반곡과 동산초등학교로 향했다.
아내를 동산에 내려주고 반곡에 들어선 시각이 8시 25분쯤이었을까. 새로 오신 선생님 두 분과 먼저 인사를 나누고 아이들과 만날 시간을 기다렸다. 자그마한 학교에 강당도 있어 좀 더 따뜻하게 아이들과 만날 수 있었다. 50명 남짓한 아이들이 학년별로 줄을 서 있고 그 줄 가운데 내가 맡을 6학년 아이들 열 네명이 서서 나와 내 옆에 계신 남선생님을 흘깃 쳐다보며 웃었다. 나중에 들으니 남선생님이 자기들을 맡을 거라는 걸 알고 내심 기대가 컸던 모양이다. 도시 아이들 6학년 아이들에게서 쉽게 찾아 볼 수 없는 담임에 대한 기대가 보여 기분은 좋았다.
6학년을 맡을 교사가 나임을 알리고 나는 곧 교실로 발길을 옮겼다. 들어서면서 인사를 건네자 수줍은 듯 한 마디씩 인사를 건넨다. 남자 일곱, 여자 일곱 각각 따로 줄을 맞춰 앉아 있는 아이들 모습을 보자 괜히 웃음이 났다. 반갑게 인사를 건네고 내 소개를 했다. 아이들에게 자기 소개할 안내장도 주고 일 년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 동영상과 안내장으로 설명도 했다. 대부분 기대를 보이는데 남자녀석들 서너 명은 시큰둥하다. 본심인지 괜히 튕겨보는 것인지 헷갈리지만 그것에 신경을 쓸 필요는 없어 보였다.
그런데, 이야기가 거의 마칠 즈음 여기 저기서 청소 이야기가 나오며 청소구역을 빨리 정해달란다. 이 작은 학교에 적은 아이들 수로 넓은 공간을 해결해야 하는 아이들에게 청소는 부담이어서일까. 그런데 청소는 주로 점심때 한단다. 방과후 활동이나 특기적성이다 시골학교지만 다양한 오후활동이 있어 부득이 청소가 점심으로 당겨져 있었다. 오랫만에 시골학교 식당에서 밥도 먹었다. 6년 전 밀양 단산초등학교가 문득 떠 올랐다. 그곳에서도 급식은 꼭 이런 분위기였다. 허름한 식당에서 50남짓한 아이들이 함께 밥을 먹는 모습. 마치 내가 6년 전으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오후에는 아이들에게 일기쓰는 법도 가르쳐 주었다. 생각대로 쓰기를 싫어하는 아이들은 쓰는 횟수와 양에만 관심을 보였다. 그래서 지난 문집에 담긴 우리 반 아이들의 글을 들려주었다. 기본적인 설명에 이은 보기글은 일기에 대해 아이들에게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섰던 모양이다. 조금은 흥미를 보이는 듯 했다. 내일 써올 아이들의 글이 기대된다. 늘 그랬듯이 시골 아이들의 글은 살아있다. 오랜만에 살아있는 글을 보고 싶다. 물론 이 아이들에게도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일 년 학급운영에 대한 기대감 속에는 지난 학급운영 속에 담긴 다양한 활동을 눈으로 직접 본 탓이 컸다. 비록 2학년과 4학년들과 지낸 이야기들이지만, 늘 딱딱한 학교와 교과서속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아이들에게 비친 내 학급운영은 새롭게만 보이는 듯 했다. 벌써부터 진달래 잔치와 선생님 집 방문에 대한 기대가 크다. 방학 중 1박 2일로 놀러가자는 아이들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여주자 아이들은 조금씩 흥분하는 모습도 보여주었다. 도시 아이들이었면 금새 보여주지 못할 얼굴들이었다.
이래저래 마음 한 켠 아픈 사연들을 가진 아이들이 있지만, 생각보다 아이들은 밝았다. 1학년부터 6학년까지 함께 살아왔다는 아이들이어서 보이지 않는 끈끈한 정도 엿보였다. 오늘 둘째 시간이 끝나고 어머니 한 분이 어린 아이를 안고 찾아와 인사를 건네시기도 했다. 잠깐 학교를 들렀는데, 선생님께 인사라도 드리는 게 예의일 것 같다며 교실을 찾아주신 어머님의 말씀도 참 정감있다. 어린 아이를 바닥에 내려놓자마자 열 네명 아이들이 달려들어 어린 아이를 서로 안으려 난리를 피우는 아이들 모습도 정말 정겨웠다. 속으로 '그래 시골은 정말 이랬지. 저런 아이들이었지.'하는 생각을 했다. 이 마음 따뜻한 아이들과 일 년 살이를 할 생각에 그동안 나를 짓눌렀던 우울함이 거의 사라진 듯 했다.
작은 학교라 잡일은 많았지만, 이런 아이들과 일 년 살이를 할 생각에 답답한 마음이 탁 풀린 듯 했다. 헤어질 때 아이들과 한 명씩 인사를 했다. 2학년들처럼 뽀뽀도 하고 안아주고도 싶었는데, 특히 남자녀석들 "노 땡큐"란다. 그래서 악수로 대신했다. 생각보다 여학생들이 훨씬 반갑게 손을 잡고 악수를 건넨다. 수업을 마쳤는데도 아이들 몇몇은 가질 않고 한동안 교실에서 놀다 갔다. 학교 업무를 정리하려 교무실을 내려갔다 왔더니 어느새 아이들은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두 아이가 건넨 붕어빵. 세 개였는데, 자기들은 이미 많이 먹고 왔다며 굳이 다 먹으라 했다. 그래서 두 개는 내가 먹을 터이니 한 개는 둘이 갈라 먹으라 했다. 한 입 먹고 기념이다 싶어 사진 한 장 찍어 두었다.
그렇게 30분이 흘렀을까? 오후 3시가 넘어설 무렵 교실 뒷문을 열고 수줍은 듯 여자 아이 둘이 붕어빵을 사왔다며 나보고 먹으란다. 정든 곳을 떠나 먼 금산과 논산이라는 곳을 찾은 나의 우울함을 알기라도 한 것일까? 아님 남선생님에 대한 호감과 일 년살이에 대한 기대감때문일까? 어찌나 고마운지 나는 모든 일을 제쳐두고 아이들을 맞았다. 나는 아이들에게 고맙다고 했다. 먼 길을 떠나 선생님이 지난 열 흘동안 무척이나 우울했는데, 너희들 때문에 그 우울함 다 날려버렸다고 고맙다 했다. 그랬더니 수줍게 웃더니 그러셨냐 한다. 그리고 꼭 선생님 집에 초대해 주었으면 하고 나중에 1박 2일로 나와 여행을 떠나자 한다. 나는 그러고마 했다.
나에게 다가와 수줍게 붕어빵을 건넨 민영이(왼쪽)와 현정이. 잠시 이야기를 나눠보니 그 아이들도 가슴에 외로움이 가득한 아이들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다시 함께 차를 타고 길을 가는 아내와 나는 무거운 아침과 달리 학교에서 만난 아이들 이야기로 한 시간 퇴근길을 다 채웠다. 아내보다 훨씬 좋은 아이들을 만난 탓에 배아프다는 소리까지 들어가며 돌아온 퇴근길. 지난 열흘간의 우울함을 한 번에 털어내준 아이들과 만난 오늘 하루. 나는 올해 일 년, 붕어빵 세 개에 담아준 따뜻한 아이들의 정을 오롯이 되돌려 줄 것이다. 빨리 내일이 왔으면 좋겠다. 풋내나는 그 아이들을 빨리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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