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12교사일기/2010년 교사일기

나 좀 정신차리게 해주소!

갈돕선생 2010. 3. 17. 16:20

오랜만에 학교교육과정을 다루었다. 이곳 충남은 교무가 교육과정을 다룬다. 4년 만에 학교교육과정 작업에 직접 다루게 되니 모든 게 낯설다. 한동안 멀리서만 보던 학교교육과정을 만나게 되니 거짓으로 가득 찬 구호들만 어지럽게 널려 있는 것 같아 기분이 썩 좋지 않다. 12년 전 밀양에서 처음 연구부장을 맡아 그 뒤로, 7년 동안 쭉 학교교육과정을 다뤄올 때는 교육청에서 요구하는 대로 짜는데 급급해 비평하거나 비판할 여유나 능력도 부족했다. 그러나 학교에서 교육과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된 몇 해 전부터는 모든 학교의 교육과정을 가볍게 보지 않는다. 내 학급교육과정을 흔드는 것은 늘 학교교육과정이었고 아이들의 삶을 흔들어 놓고 잘못된 길로 안내하는 것도 학교교육과정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아이들의 삶을 가운데 두고 배움과 교육의 길을 그려나가야 할 우리네 교육과정은 온갖 구호와 그럴듯한 문구로 도배가 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교육과정에 담는 모든 철학과 실천의 기준이 아이들이 아니라 교육청에게 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은 지난해 전국학업성취도평가를 가열 차게 밀어붙인 곳이다. 그런데 뜬금없이 올해 전면적으로 인성교육운동을 전개한단다. 갑작스런 도교육청의 시달로 모든 학교는 학교만의 개성을 미룬 채 우선 교육청이 요구한 운동을 따르기 위해 저마다 교육청이 만족해 할 수준의 실천방안을 교육과정에 찾아 넣느라 분주하다.


실제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과정에서 필요한 것과 해야 할 것들이 담겨야 할 학교교육과정은 그저 교육청을 위한 교육청의 실적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다. 나를 포함한 교사들 또한 교육과정을 아이들의 성장과 변화를 꾀하는 준비라기보다 하나의 제출할 숙제로만 여기고 있다. 만들어가는 교육과정이니 창의적인 교육과정이니 100대 교육과정이니 숱하게 떠도는 말들이 왜 모든 학교에 스며들지 못하고 아이들 삶과 교사들의 성장을 돕지 못하는지 정말 반성하고 또 반성해야할 일이다.


올해부터 교육과정 자율화라는 명목 하에 교과시수 증감에 대한 교육청의 요구도 빗발치고 있다. 진정 누구를 위한 자율이고 왜 자율화를 꾀해야 하는지 그야말로 목적과 과정이 바뀐 형국이다. 교육과정은 가르치고 배우는 교사와 학생들의 길잡이여야 한다. 그것은 교육청이 간섭할 일이 아니다. 교육과정은 교장을 비롯한 단위학교 교사들의 관심과 정성으로 만들어지고 가꿔 나가야 하는 길 그 자체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녹록치 못하다. 나같이 억지로 교무 일을 떠맡은 교사나 1, 2년이면 훌쩍 떠나버릴 교사들에게 한 학교의 교육과정이 눈에 들어올 리가 없다. 아이들 삶을 가꾸고 안내할 여력도 없다. 그저 한 해 한 해 시간만 빨리 흘러가길 바랄 뿐이다.


그 사이에 아이들은 갈 길을 잃고 겉돌고 헛돈다. 교육과정은 학교평가나 장학지도 시에 내미는 문서로만 남는다. 일반학교에서 가장 중요시 여기는 교육과정은 오로지 꼴찌 학교로 낙인찍히지 않아야 하는 점수 따기와 각종 대회 참가로 실적만을 높여나갈 수 있는 것에만 관심을 둘 뿐이다. 겉과 속이 다른 교육과정 속에서 교사도 무엇을 가르쳐야 할 지, 무엇이 가르쳐야 할 것인지, 내가 왜 교사이고 교사는 어떠해야 하는지 살피지도 못하고 그저 하루하루를 보내기만 한다. 요즘 내가 딱 그렇다. 온갖 거짓과 위선으로 감싸인 껍데기를 뒤집어쓰고 살아야 하는 내가 요즘 참 싫다. 누군가 내게 비난의 화살을 던지며 침이라도 뱉어주었으면 좋겠다. 그제야 조금이라도 정신을 차릴 것 같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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