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12교사일기/2010년 교사일기

이제 비만 오면 참 좋겠다.....

갈돕선생 2010. 6. 23. 16:22

지난해까지 나는 한 반의 담임이었다. 순하디 순한 우리 반 아이들과 일 년을 살면서 모난 내 성격도 타지로 온 힘든 과정도 잘 이겨낼 수 있었다. 올 해는 담임이 아닌 교과전담이다. 체육에다 영어까지. 5월 중순까지는 그나마 견딜만 했다. 오랜만에 담임을 맡지 않으니 한쪽 머리가 빈 것처럼 가볍고 잔 신경을 쓰지 않으니 모처럼 이런 저런 공부에 집중할 수 있었다. 하지만 6월로 들어서면서 조금씩 때로는 빠르게 삶이 지루하고 재미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만 생각해 보니 아이들과 일 년살이를 해야할 담임을 맡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힘들고 신경이 많이 쓰이는 담임이지만, 그래도 아이들과 어울려 사는게 이제는 내 삶이 된 것을 뒤늦게야 깨달았다. 교과전담을 맡으니 정해진 시간 외에는 아이들과 서로의 느낌을 나눌 시간이 무척 부족하다. 그러다 보니 수업 가운데 벌어지는 아이들 모습을 이해하지도 읽지도 못해 때로는 화도 내고 짜증도 내기도 했다. 이제는 좀 나아져 평탄하지 못한 아이들 가정환경을 생각하며 좀 더 마음을 열고 아이들에게 다가가야겠다는 마음으로 아이들을 대한다. 언제나 이런 시행착오를 줄일런지. 난 아직도 한참 멀었다.

 

사설이 길었다. 이렇게 오랜만에 교단일기란에 글을 올린 까닭은 아이들과 오늘 체육수업을 하면서 새삼 느낀 게 있기 때문이다. 내가 가르치는 학년은 3-6학년 32명이다. 처음에는 손을 건네며 악수를 청하는 내 모습을 낯설게 보던 아이들과 가정에서 안정적으로 어른들의 보살핌을 받지 못한 탓에 말과 행동이 거칠어 쉽게 대하지 못했던 아이들때문에 조금 힘들었다. 담임이 아니어서 아이들도 쉽게 마음의 문을 열지 않았다. 시간이 조금 흐른 탓일까. 요즘 아이들이 날 대하는 태도도 조금씩 바뀌어 간다. 여전히 거칠고 당돌하고 때로는 시비까지 거는 아이들이 있지만, 이제는 너그럽게 받아준다. 일그러진 그 아이들 모습이 아이들 탓만은 아니라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오늘은 3학년과 배드민턴을 4학년과 씨름을 했다. 요즘에는 서슴없이 내 옆에 와서 여자아이건 남자아이건 상관없이 몸을 부대끼려 한다. 배드민턴도 서로 나와 같이 하려 하고 씨름도 같이 하자며 덤빈다. 예전에는 친근하게 다가가려던 나를 변태다 징그럽다 했던 여자아이들도 이제는 다가와 씨름을 하잖다.

4학년 한 여자 아이는 내 등에 올라타 업히고는 재밌다며 웃는다. 나도 기뻐 그 아이를 업고 매트로 만든 씨름 경기장 한 바퀴를 돌았다. 한 녀석은 쉬는 시간, 매트에 잠시 누워있는 내게 다가오더니 어제 나한테 긁혔던 턱수염을 매만진다. 이래저래 아이들과 씨름과 배드민턴으로 몸을 부대끼니 오랜만에 몸에 땀이 베였다. 기분도 참 좋다. 이 아이들과 이렇게 친해질 수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이들은 별반 다를 게 없다. 마음을 주고 열면 다가온다. 해마다 깨달으면서도 잊고 사는 나는 뭔가 싶다.

 

지금 창 밖에는 4학년 남녀 아이들이 뜨거운 햇볕 아래 어울려 운동장에서 축구를 한다. 사실 지금 시각에는 단단히 붙잡혀 공부를 해야한다. 다행히(^^)도 담임선생님이 출장 중이시라 자유시간을 제 맘대로 즐긴다. 오랜만에 아이들 살냄새를 느낄 수 있어 좋은 하루였다. 여전히 각기 다른 학년의 32명과 호흡을 맞추기가 어렵지만, 조금은 빈틈도 보이고 그네들 곁에서 지낼 방법을 찾은 것 같아 마음이 놓인다. 오늘 축구국가대표선수들이 16강에 진출한 것보다 오늘 아이들과 지낸 내 모습이 훨씬 대견하고 만족스럽다. 하~ 이제 비만 오면 딱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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