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돕이야기 만들기/행복을 꿈꾸는 삶

우리교육 쫑파티 풍경

갈돕선생 2010. 6. 12. 10:37

제게 월간 우리교육은 아무것도 모르고 달려들었던 학교생활을 외롭지 않게 아니 당당하게 살도록 만들어 준

동지였습니다. 독자로서 인연을 맺고 지역연수기획으로 인연을 맺고 필자로 저자로 인연을 맺으며 이제는

한 식구라는 생각마저 드는 대상이 돼 버렸습니다. 우리교육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박봉이지만

보람을 느끼며 사는 기자와 편집자들을 만났죠. 제 교직 생활에서 우리교육을 빼놓을 수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랬던 우리교육이 사라진다는 것은 제게는 큰 충격이었고 안그래도 갈수록 힘들어지는 학교현장에서 날 지켜줄 든든한 지킴이가 이제는 없다는 생각때문에 한동안 우울했습니다. 어쩌면 전교조가 불법화되더라도 이만한 상실감을 주지는 못할 것만 같았습니다.

 

20년 묵은 우리교육 정신을 지키려 해던 이들이 정작 사표를 내고 회사를 나오고 우리교육 창간정신보다는

자본의 논리를 더 앞세우며 구조조정을 했던 이들은 당당히 회사에 남아 있는 이 아이러니한 현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햇갈리기만 했습니다. 관료화된 전교조 집행부와 진보를 생계수단으로 팔아먹는 일부 지식인들의 행태를 또 다시 바라봐야 한다는 것에 가슴이 아프고 화가 치밀었습니다. 이제 모든 게 정리는 됐습니다. 회사는 그들만의 출판을 기획하고 있고 회사에서 나온 사람들은 새판을 짜려 하고 있습니다. 많은 선생님들이 우리교육, 아니 이제 더 이상 우리교육이라고 말할 수 없는 회사에 등을 돌리고 절필, 절독선언을 하고 새판을 짜라는 이들과 함께하려 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낡은 틀이었고 한계에 다다른 (주)우리교육에서 빠져나온 것이 다행이다 싶은 생각도 듭니다.

새로운 매체로 교육운동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갈 일꾼들의 미래에 희망을 걸어도 보고 싶습니다.

그런 자리가 지난 토요일 홍대근처 모 호프집에서 있었지요. 절친 윤승용샘과 함께 홍대 앞 수 많은 인파를 뚫고 달려간 그곳은 김부장님과 기자들이 한창 쫑파티를 준비를 하고 있더군요. 반갑게 맞이하는 그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냈던 지난 토요일을 잠시 떠올려 보았습니다. 오래전 이름만 듣던 많은 분과 멀리서 얼굴만 뵈어던 선생님들을 만나뵐 수 있어 영광이었고 뜻 깊었습니다. 조만간 만들어질, 새롭게 새 판을 짤, 매체에 기대를 가져주세요. 그때 우리 선생님들 꼭 힘을 보태주세요. 선생님들도 저와 같은 길, 아니 저보다 나은 길, 행복한 만남과 인연이 이어질 수 있도록 안내자 노릇도 하겠습니다.

 

참 많은 분들이 모이셨습니다. 저 멀리 가운데 고개숙이며 말할 차례를 기다리는 제가 보입니다. 왼쪽 머리를 빡빡밀고 오신 윤지형선생님. 오래 전 해직교사의 상징이시기도 했던 윤지형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또 좋았습니다. 오른쪽 맨 끝 이진주기자도 보이네요. 5년전 인연을 맺은 속 깊고 멋진 여인입니다.

 

 왼쪽이 [영혼이 없는 사회의 교육]의 저자 이계삼선생님,  오른쪽이 예전 우리교육 편집장이기도 했고 지금은 대안학교인 성미산학교의 교장선생님인 박복선선생님.

 

 잘 아시죠. 초등수학의 전설 조성실선생님. 3년 전 김해에 초대했을 때 일화로 잠시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왼쪽 젊은 아가씨는 지난해 우리 아내 취재차 내려왔던 김도연기자

 

제 옆에 신혼살림차리자 마자 잘린 이은주기자. 옆에 서계신 분이 전에 말씀드렸던 충북 음성에서 연극수업을

잘 하시는 김종욱선생님. 맞은 편 조금 연세든 선생님이신 김익승선생님. 이분의 실천사례로 글쓰기도 공부했는데  막상 이렇게 뵈니 무척 영광이었습니다. 더구나 제 이름을 알아보시고 글 잘 읽고 있다며 덕담까지 해주셔 몸둘바를  몰랐답니다. 김익승 옆에 앉아있는 사람이 바로 절친 윤승용.

 

                      아, 여기에 김익승선생님과 윤승용샘이 보이네요.^^

 

         중등학급운영의 전설 이상대선생님. 기자들 결혼식때 한 번은 주례로 한 번은 객으로 만나 뵈었는데,

         이제는 서로 농담도 건낼 사이가 됐습니다. 사진으로만 뵈도 좋은 선생님이라는 게 팍팍 느껴지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