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지난 달 하고도 보름이 지났다. 교육공동체 벗의 출판위원회 회의가 우리집이 있는 금산에서 열렸다. 그때 찾아주신 이상대선생님은 늘 지난 일 년간 결혼식때만 뵙던 분이었다. 중등 학급운영 작은 책과 로그인이라는 책을 엮어내신 분으로만 알고 있다가 걸쭉하고 거침없이 터져나오는 수많은 생물들의 이야기를 한참이나 넋이 빠진 채로 들어 그분의 새로운 면에 놀랐던 기억이 있다. 나이가 점점 들면서 주워들은 얘기를 바로 바로 까먹는 첨단 시스템을 장착해서 그런지 정확한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참으로 재미난 생물들의 이야기였다. 그렇게 이야기를 듣고 있었는데, 이상대선생님이 불쑥 내게 물으셨다. <곤충전설>을 읽어봤냐고. 책 제목조차 낯설었던 내게 초등학교 교사라면 꼭 읽어보면 좋겠다며 적극 권하셨다. 그러고 보니 몇 달 전 시시IN에 괜찮은 책인데 잘 팔리지 않은 책으로 소개됐던 이상대선생님의 책이 아니었던가 싶기도 했다. 하여간 난 그날 꼭 읽어봐아할 책 목록에 이 책을 올려 놓았고 오늘에야 비로소 읽게 됐다.
이 책에는 열 두 가지 곤충이야기가 담겨있다. 하루살이, 똥파리, 귀뚜라미와 반딧불이, 땅강아지, 칠성무당벌레, 나나니벌, 개미와 진딧물, 길앞잡이, 방아깨비와 섬서구메뚜기, 모기, 매미, 고추잠자리. 어린이를 위한 동화책이니만큼 담긴 삽화와 글자의 크기는 시원시원했다. 이제 노안이 한창 진행중인 나에겐 제격^^ 국어교과에 좀 더 관심을 두기 시작하면서 어린이 책을 읽을 때마다 생긴 버릇은 이 책을 수업시간에 어떻게 다루면 좋을까 하는 것이다. 아이들과 나눌 이야기가 없고 교훈이 감동을 앞서가는 책들은 여지없이 제껴 놓는데, 이 책은 벌레들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과 그 지식이 어떻게 이야기로 만들어져 관련을 맺을 수 있는지 흥미롭게 쓰여져 있다. 신월중학교 친구들과 함께 만드셨다 하니 이야기 구성에 학생들의 창의적인 생각들이 반영이 되었을 게 분명하다.
이 책은 <곤충전설>이라는 책 제목과 잘 어울리게 마치 옛이야기를 읽는 것 같았다. 하루살이가 왜 하루만 살게 됐는지, 똥파리가 왜 똥을 먹게 됐는지, 칠성무당벌레의 딱지 날개에 점은 왜 생겼는지, 개미와 진딧물이 친한 까닭은 무엇이며 모기는 왜 피를 빨아 먹는지, 고추 잠자리는 왜 몸이 빨게 졌는지 하는 건 아이들뿐만 아니라 나도 궁금한 사실이다. 근데 그 이야기를 딱딱한 글로 과학적인 용어를 써가며 이야기를 했을 때는 정말 읽고 싶지도 알고 싶지도 않았을 터. 첫 이야기를 들자면 하루살이의 대장을 살리기 위해 곤충하눌님에게 하루만 더 살게 해달라는 말을 어렵게 전했다. 중간에 이야기를 전해주던 귀먹은 달팽이가 잘못 전달해 하루만 살게 해달라고 해 곤충하눌님이 이상하게 여기면서도 소원을 들어주었다. 그래서 하루살이는 하루 밖에 살지 못하고 운 좋은 놈은 이삼일도 산다. 어떻게 생각하면 싱거운 우스겟소리일수도 있으나 아이들의 웃음코드를 알고 있는 나로서는 이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들려주면 좋아할 얘기임이 분명하다. 이런 전설들은 하나의 이야기들로만 끝나는 게 아니라 다른 이야기 속에서도 같이 이어져 곤충세계가 하나의 세계임을 아이들에게 꼭 확인시켜 준다. 우리가 알고 있는 우리 신화와 전설이 그랬던 것처럼. 그래서 전혀 낯설지 않다.
이야기 마다 은연 중에 드러나는 교훈성은 귀찮은 잔소리로 들리는 게 아니라 이야기와 하나가 돼 그래 맞아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그러고는 난데 없이 곤충이 아닌 나를 순간순간 돌아보게 한다. 아이들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하루살이의 삶을 모두 빼앗아간 귀먹은 달팽이의 잘못때문이었듯이 살다보면 우리들도 작은 잘못 하나 때문에 누군가의 운명을 바꿀 수 있으니 조심하자는 얘기는 전혀 불편하게 들리지 않는다. 부모님께 효도를 해야하지 않겠느냐 하는 직접적인 표현이나 이야기 속에서 도드라지게 부각시키지 않아도 우리도 어머니 가슴에 눈물이 고이게 해서는 안 되겠지 않냐며 찔린 가슴으로 자연스럽게 눈을 돌리게 만든다. 이야기가 주는 힘은 드러나는 교훈성이 아니라 마음을 흔들어 놓는 감동에 있다는 걸 이제는 누구나 다 알고 있지만, 결코 쉽지 않은 일인데 <곤충전설>의 열두 가지 이야기는 그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이 책은 생태동화다. 아이들에게 벌레들에게 관심을 갖게 하고 이것이 곧 자연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져 생명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게 하는 게 이 책의 가장 큰 바람일 것이다. 학교에 있다보면, 또는 아이들과 뒷 산이라도 함께 걷다보면 벌레들을 보고 어찌나 놀라는지 모른다. 나 또한 크게 다르지 않지만, 선생 체면에 꾹 참고 있는 것뿐이다. 그러나 아이들의 반응은 어른인 나보다 훨씬 즉각적이고 잔인하기까지 하다. 있는 힘껏 손을 대 죽여버리기 때문이다. 이오덕선생님은 아이들이 다른 생명을 함부로 죽이는 것은 그 생명을 잘 모르기 때문이라 하셨다. 밀양 촌에 살았던 가까운 내 친구는 계곡에서 개구리를 잡아 던져 터뜨리는 재미로 하루를 보낸 적도 있다 했다. 돌에 부딪혀 떠지는 개구리의 조각들이 꽤나 자극적인 쾌감을 안겨다 주었던 것 같았다. 그런데 그 친구는 어릴 때는 다 그렇게 지냈다며 웃어 넘겼다. 내가 만난 아이들 가운데 어떤 아이는 학교에 와서 쉬는 시간마다 운동장 화단에 가서 개미를 죽이는 걸 대단한 일로 여겼다. 친구들이 개미를 함부로 죽인다며 고자질도 해댔지만, 그 아이는 집에서도 늘 그렇게 한다며 무심하게 개미를 죽이며 지냈다. 아이들은 모른다. 개미를. 아니 생명을. 가르치는 나 같은 부족하고 못난 교사들도 생명을 모르니 제대로 가르치지도 기르지도 못한다.
<곤충전설>은 이런 못난 교사와 아이들에게 생명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키고 우리들이 함부로 헤치기에는 많은 사연이 있는 그래서 때로는 보살펴주어야 한다는 마음을 일으키기에 부족함이 없는 동화다. 굳이 아쉬움을 꼽자면 단 한 편이라는 것. <곤충전설 2>는 제자들이 써낼 수도 있지 않겠냐 하셨지만, 살아있는 친근한 생물들의 이야기를 언제 어느 자리에서든 꺼내실 수 있는 이상대선생님이라면 머리가 더 희어지기 전에 어서 다음 작업을 해 보시는 게 어떨까 싶다. 하~ 꽤 오랫동안 내 컴퓨터 모니터 귀퉁이에는 어디 가지도 않고 마냥 머물고만 있는 파리 한 마리가 있다. 이 추운 날 따뜻한 자리 하나 차지하고 있는 걸까? 이 파리는 또 무슨 사연이 있는 걸까? 이 파리는 <곤충전설>이라는 책 덕분에 좀 더 오래 살게 된 줄이나 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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