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돕이야기 만들기/읽은 책 들려주기

조지오웰의 '위건부두로 가는 길'을 읽고......

갈돕선생 2011. 2. 5. 18:04

위건 부두로 가는 길

 

얼마 전 나는 교육공동체 벗의 공방 가운데 하나인 '르포공방'을 찾았다. 르포작가로 익히 잘 알려진 김순천씨의 공방이었다. 르포공방을 찾기 전에 읽어야 할 추천도서 중에서 조지오웰의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을 선택한 나는 이 책을 만난 것에 무척이나 감사했다. 흔히 '동물농장'이나 '1984'라는 소설로만 알려진 그가 실제로는 주옥 같은 수많은 르포와 에세이를 쓴 작가였다는 사실을 뉘늦게 알았기 때문이었다. 특히 이 책은 '레프트 북클럽'이라는 영국의 한 진보단체이자 독서클럽에게 청탁을 받아 영국의 위건, 리버풀, 세필드의 탄광지대에 사는 광부들의 실상과 그곳의 하숙집에 기거하며 실업자들과 밑바닥층의 일상과 삶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주고 있다. 더욱 놀라운 건 그들의 처참하고 궁핍한 실상만이 아니었다. 1930년대 영국 도시 일상들이 2010년대를 사는 우리네 도시 일상과 무척이나 닮아있기 때문이었다. 조지오웰은 투덜대고 때로는 실날하게 꼬집고 있었지만, 당시 영국의 하층민 복지제도가 지금의 우리네 복지제도 못지 않게 구비되고 있었다는 점이 내게는 큰 충격이었다.

 

오웰은 하층 노동자들과 실업자들의 삶을 매우 섬세하고 자세히 묘사를 해 독자들은 마치 눈 앞에서 그 광경이 펼쳐지는 것 같은 느낌을 들게 할 정도였다. 심지어 그네들의 독특하고 역겨운 냄새까지 풍기게 할 정도의 묘사때문에 글을 읽는 내내 나는 오웰이 존경스럽기만 했다.(물론, 번역을 훌륭하게 해 낸 이한중씨의 노력도 큰 몫을 했겠지만^^) 그럼에도 그는 북부지역의 슬럼가를 글로 제대로 그려내지 못하는 한계와 불만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글이란 게 그렇게 미약한 것이다. '지붕샘'이나 '여덟 식구에 침대 넷'이란 짧막한 문구가 무슨 소용이겠는가? 흘려 보며서 아무 인상도 남기지 못할 말에 불과하다. 그런가 하면 이 짧은 말들에 얼마나 비참한 현실이 담길 수 있는가!"

 

한편, 그가 이 글을 쓰면서 내뱉었던 말 가운데 가장 가슴에 와 닿는 말은 또 다른 곳에 있었다.

 

"노동 계급과 정말 가까워진다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 나중에 더 이야기 할 테지만, 여기선 가능하지 않다는 내 생각만 밝혀두기로 한다."

 

입으로 늘 노동계급의 해방을 외쳐온 많은 진보인사들과 이른바 진보주의자들의 상투적인 언행과 위선적인 행위를 은근히 비판하는 그의 글을 읽자 마자, 나는 '맞아, 그래'였다. 나 또한 그러한 그늘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지만, 그동안 가깝고 먼 곳에서 진보주의자라고 외쳤던 수많은 사람들이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돌아보면 조지오웰의 진단은 매우 정확히 일치하고 있다. 자기 계급(중산층)을 벗어나지 못한 그들의 모습에서 정말 노동계급과 가까워 지는 일은 참으로 힘들겠다, 함부로 할 얘기들이 아니라는 생각만 들었다. 교실 속 하층민으로 살아가는 아이들의 삶조차 보살펴 주지 못하며 그들의 편이 돼 주지 못했던 지난 날의 내 모습도 조지오웰의 냉철한 비판과 시선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조지오웰이 더욱 마음에 들었다.

 

지금까지가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의 1부였다면, 이러한 영국과 유럽의 진보주의자들의 위선과 한계를 지적한 에세이가 이 책 2부에 실렸다는 점은 또 다른 재미다. 조지오웰의 사회주의자, 진보주의자와 같은 이른바 '주의자'들의 한계와 위선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조지오웰에게 글 청탁을 했던 '레프트 북클럽'의 편집자 빅터 골란츠는 만족했던 1부에 비해 2부가 클럽회원들의 비위를 상하게 할까 싶어 오웰이 스페인으로 떠난 사이에 2부에 대한 불만과 이의제기를 서문에 담아 책을 출간해 버리기까지 한다. 그런데 가만히 조지오웰의 글을 보면, 사회주의자들과 진보주의자들을 행태가 2010년을 사는 우리네 사회주의자이자 진보주의자들을 자처하는 인물들과 어찌나 닮았는데 깜짝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의 이상인 사회주의를 위해 억압받는 모든 노동자들과 지식인들이 단결해야 함을 외치는 그의 주장은 1980년대 혁명주체세력을 놓고 다투던 우리네 사상투쟁과 꼭 닮아있기도 했다.

 

"우리가 함께 목표로 삼고 단결할 수 있는 이상은 사회주의의 바탕이 되는 이상 밖에 없다. 그것은 바로 정의와 자유다. 허나 이런 이상은 거의 완전히 잊혀버려 '바탕'이란 말을 쓸 수도 없는 지경이다. 이 이상은 이론 일변도의 독선과 파벌 다툼과 설익은 '진보주의'에 층층히 묻혀 버렸다. 똥더미 속에 감춰져버린 다이아몬드가 되어버린 셈이다. 사회주의자가 할 일은 그것을 찾아내는 것이다. 정의와 자유 말이다! 이 두 마디야 말로 온 세계에 울려퍼져야 하는 나팔소리이다."

 

안타깝게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야 했던 조지 오웰의 글을 그가 세상을 떠났던 나이와 비슷한 시절에 읽을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했다. 밑바닥 삶을 살아야만 했던 노동계급과 하층민들에게 무한한 연민과 사랑을 보냈던 사람다웠단 사람, 조지 오웰. 나는 그에게서 좀 더 사람답게 살아가야할 명분과 이유를 발견할 수 있었다. 교사로 좀 더 낮은 곳에 머물며 살아가야 하는 아이들의 곁에서 살아가야 할 가르침도 얻을 수 있었다. 앞으로 나름 자의든 타의든 많은 글을 써야 하는 내가 어떤 자세로 어떤 마음가짐으로 글을 써야 하는지 깨달을 수도 있었다. 그런 뜻에서 나는 요즘 조지오웰의 에세이집 '나는 왜 쓰는가'를 읽고 있다. 그의 삶과 사상의 궤적을 세세하게 읽어낼 수 있어 기쁘게 책을 읽고 있다. 그와 같을 수는 없겠지만, 그를 닮고 싶다는 생각이 요즘 무척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