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12교사일기/2012년 교사일기

오랜 만에 하늘이 과랑과랑하다....

갈돕선생 2012. 3. 9. 14:43

어제 사실 이번 주 내 일기의 주인공 '서연'이가 학교를 오지 않았다. 다른 아이도 있는데, 자꾸 서연이만 신경 쓰는 것 같아 이제 서연이 이야기는 그만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교실로 들어섰는데, 끝내 서연이는 오지 않았다. 여지없이 서연이는 내 의도를 단 번에 무너뜨리는 아이였다. 아침 9시가 되기 전 교무실에서 서연이 집으로 전화 연락을 했다. 서연이 할머니가 바로 받으셨다.

 

"할머니, 학교예요. 서연이가 학교를 오지 않았네요."

"누구요. 학교라고요. 아, 서연이 담임선생님가봐유."

"예, 서연이 담임입니다."

"아, 참 서연이가 학교를 안 갈려고 하네유. 며칠 전부터 학교를 안 가려고 하는데, 뭔 일인가 싶어 물어도 대답도 안 하고 또 친구들이 괴롭히나 싶어 물어도 아니라고 하고."

"제가 하루종일 아이들 하고 같이 있는데, 친구들이 괴롭히는 건 아닙니다. 왜 학교를 안 올려고 할까요?"

"글씨유, 지도 모르겄네유. 방금 지 아빠가 델고 학교로 갔응께 좀 기다려 보시지유. 금시 갈 거구먼요."

"아, 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기가 무섭게 교무실 창 밖으로 서연이가 보인다. 얼굴은 굳어 있다. 옆으로 서연이의 아버지가 보인다. 내가 잘못한 것일까? 지나친 관심이 화를 불러 일으킨 걸까? 순간 아버지를 만나 무슨 이야기를 나누나 걱정이 됐다. 덩치가 산 만한 아버지의 까무잡잡한 얼굴도 역시 굳어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아버지에게 인사를 하고는 나는 이내 서연이에게 눈길을 돌리곤,

"학교 이제 왔네. 어서 들어와. 서연아."

옆에 서 있던 서연이 아버지는

"야가, 학교를 안 갈려고 하네요. 친구들이 또 괴롭히나 해서 물어봐도 그랬고 왜 학교 안 가고 싶냐고 물어봐도 대답도 안하고 미치겄네."

아이의 옆에는 함께 타고 왔을 아버지의 오토바이가 서연이의 모습처럼 딱딱한 상태로 자리 잡고 있었다.

"서연아, 춥다. 어서 교실로 가자. 어제 선생님하고 열심히 하자고 약속도 하고 선물도 받은 녀석이 왜 그래."

잔뜩 울상을 짖고 있는 아이 옆으로 아버지가 다다가 손을 붙잡고 들어가서 이야기 하자 해도 아이는 막무가내다. 일단 들어가서 얘기하고 가자고 해도 아이는 울어버린다.

"얘기하자 해놓고 나 놔두고 갈 거잖아."

"아니, 이야기만 하고 갈겨. 일단 그냥 들어가자니께."

"아냐, 싫어. 나 학교 안 갈 거야."

답답했던 아버지는 급기야 아이의 머리를 한 대 때렸다. 놀란 나는 그러지 말라 말씀드렸다. 이 뒤로로 20분 동안 아이의 아버지와 나, 교감선생님, 행정실장이 한 아이를 두고 오랫동안 시간을 보냈다. 결국 아이를 이길 수 없었던 어른들은 아이를 아버지에게 맡겨 보내야했다. 이렇게 어제 하루는 수업도 그저그렇게 보내며 마음만 써야했다. 오후에 서연이 집으로 전화를 또 했다. 지금은 상황이 어떤가 싶어 궁금하기도 하고 걱정이 되기도 해서였다. 이번에도 할머니가 받으셨다.

"서연이유? 학교 갔지 않았남유? 집에 안 왔는디?"

"아침에 학교 안 가겠다고 해서 아버지가 데리고 가셨는데, 애가 아버지 한테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해서 그랬는지 일 하는 곳에 데리고 가셨나 보네요."

전화를 끊고서 오늘 벌어진 일이 '내 탓인가?' 하는 자책감이 들었다. '설마 나 때문에 학교를 설마 오지 않으려 하는 건 아니겠지?' 아이들을 만나면서 이런 경험을 해 본 적이 없었던 지라  내심 무척 당황스러웠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내내 마음은 무거웠다. 우연일까? 우습게도 요즘 내가 삘이 꽂혀 읽고 있는 책, <심리학은 아이들 편인가>를 읽을 곳이 바로 '등교거부'꼭지였다. 나와는 직접 상관이 없는 영역이라 여겼던 부분이 어제는 왜 그렇게 와 닿는지 읽는 내내 오늘 상황과 서연이와 결부지을 수밖에 없었다. 갈수록 악화된 가정환경 속에서 절대적으로 아버지에게 기댈 수밖에 없었던 서연이의 아버지에 대한 맹목적인 집착과 성장과정이 학교라는 딱딱하고 건조한 환경에 적응할 수 없었던 탓일까? 두어달 동안 학교를 오지 않으며 집에서만 지냈던 서연이가 다시 학교라는 공간에서 반기지도 않는 친구들과 살아가는 것이 불편했던 것일까? 이전에 자유롭게 아니 어쩌면 어른들이 그냥 방치했던 서연이를 새롭게 맞은 내가 이래저래 관심을 보여주는 것이 서연이게는 지나친 간섭으로 보였을까? 불과 나흘 만에 이 아이는 내가 했던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일까? 나의 관심과 애정표현이 이 아이게는 섣부른 접근과 간섭으로 다가선 것일까? 다음 날 아침 교실로 들어서기 전까지 내 머릿속은 이런 고민과 걱정, 반성들로 가득차 있었다.

 

마침내 오늘 아침. 차를 몰고 학교로 가는 동안 어쩌면 서연이는 오늘도 학교를 나오지 않을 것만 같았다. 짐작한 대로 8시 30분 아이는 자리에 없었다. 주말까지는 기다려 보지 하는 생각으로 마음 고쳐잡고 나머지 아이들과 웃으며 인사를 나눴다. 그런데, 웬 걸. 10분 쯤 지나자 어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당당하게 거침없이 서연이가 교실로 들어오는 게 아닌가. 속으로는 얼마나 반가웠는지 이 녀석은 아마 모를 게다. '니 녀석때문에 얼마나 마음을 쓴 줄 알아?' 이 소리를 내뱉고 싶었지만, 나는

"서연아, 와~ 반갑다. 오늘은 학교에 왔네. 선생님을 봤는데, 인사도 안 해주냐." 했다.

그랬더니 그제야 나도 보지 않은채 옆으로 고개를 숙여 들리지도 않는 목소리로 "안녕하세요." 한다.

 

'그래, 그냥 됐다. 앞으로 이렇게 지내는 거지. 뭐.'하는 생각으로 나는 옛이야기 한 편 들려주고 곧바로 '우리집 강아지'와 '딱지 따먹기' 노래로 들어갔다. 노래를 부르는 아이들 틈으로 서연이를 보았다. 얼굴은 굳었지만 입은 열어 노래를 부른다. 나는 웃었다. '저 녀석 뭐야?'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어제 하지 못한 수학수업을 했다. 오늘은 준비한 대로 배추도사님의 '수학놀이'로 100을 익히는 수업을 해 보았다. 배추도사님이 만들어낸 수학놀이의 상징은 가위바위보 놀이로 '큰 수 100'을 익히는 놀이였다. 처음에는 이게 뭔가 싶다가 조금씩 놀이 속으로 빠져들어간다. 여지없이 서연이도 덜컥 걸려들었다. 갑자기 큰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얼굴 표정도 확 달라진다. 흥분상태에 들어갔다. 아이들 다섯이 한 편이 되고 내가 다른 편이 돼 승부를 가리는 놀이 속에서 서연이를 비롯한 다섯 아이들은 하나가 됐다. 그렇게 서연이를 싫어하던 아이들이 서연이에게 색연필도 빌려달라며 이기라고 기도하는 시늉까지 한다. 두 시간 내내 아이들과 수학놀이로 씨름을 하면서 아이들은 저절로 100이 만들어내는 숫자에 익숙해졌고 서연이도 나도 다른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하나가 됐다. 이후 이어진 즐거운 생활. 물감이 번지는 효과로 색다른 경험을 하는 수업이었다. 수학시간에 이은 흥분과 단합이 자연스럽게 미술시간으로 이어지면서 아이들 모습은 이전보다 훨씬 자유분방해졌다.

 

어제만 해도 그렇게 완강하던 아이가 어떻게 이렇게 달라졌는지 모르겠다.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단 번에 알 수 있는 게 아닌 건 분명하지만, 어제 오늘 나도 기분이 천지차이다. 들리는 말로는 '태권도 학원'을 가기 싫어서였다고 한다. 아이들 입에서 나온 소리였다. 지나갈 때 잠시 물었을 때도 서연이는 그렇게 대답을 했다. 그것이 과연 사실인지 어떤지는 시간을 두고 아이들 지켜봐야할 것 같다. 더는 묻지 않았다. 수업을 마치고 나가기 전, 나는 잘 지내자며 오늘도 손을 내밀었다. 그런 내게 서연이는 늘 보여주는 무심한 얼굴로 손을 내밀며 나를 흘깃 쳐다 본다. 수학시간 나랑 놀면서 그렇게 활짝 웃었던 얼굴은 온 데 간 데 없다. 어제는 '부디 서연이가 나에게 시간을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잠에 들었다. 오늘 봐서는 서연이가 내게 충분한 시간을 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래, 서연아, 앞으로 일 년 간 잘 지내보자. 너에 대한 이런 관심도 당분간 접어둘란다. 너 덕분에 어제 오늘 참 많은 걸 반성하고 배웠어. 너, 내 스승 맞아. 하하하. 이제는 지은이도 시현이도 민기도 현준이도 살펴야 할 것 같아. 하~ 오랜만에 하늘이 과랑과랑(쨍쨍의 제주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