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그 아련한 추억들/읽은 책 들려주기

이병승의 '검은 후드티 소년'

갈돕선생 2013. 3. 25. 17:27

 

북멘토 김혜선 편집장님의 선물로 받아든 책이다. 저자 이병승님의 사인본이기도 한 이 책을 며칠 간 묵혀 두었다가 서울 가는 길에 읽었다. 지난해 <여우의 화원>과 또 다른 메시지와 감동을 주는 책이었다. 한동안 동화를 잘 읽지 않았던 탓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탓인지, 아님 미국의 인종차별 이야기를 한국사람이 그것도 동화로 썼다는 게 뜻밖이었던 탓인지 선뜻 책장을 열지 못했는데, 책을 펴드는 순간부터 이 모든 선입견들은 모두 사라져 버렸다.

 

동화라고 하기에는 빠른 사건 전개가 돋보였고 실화를 바탕으로 한 동화라는 생각때문인지 몰입도가 꽤 높았다. 좋은 이야기 책은 뒷 이야기를 읽는 동안에도 궁금해 하는데, 이 책이 바로 그런 류의 책이었다. 동화라고 아이들이 읽는 책이라고 아이들에게만 권하기에는 이 동화책이 전하는 메시지는 간단치 않다. 차별과 편견이라는 낱말과 그에 따른 문화가 비단 미국이라는 사회, 그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우리 주변에서도 특히 교사라면 학교 안에서 벌어지는 아이들 사이의 차별과 편견, 교사들 스스로가 내리는 차별과 편견이 한 아이를, 한 가정을, 불행으로 이끄는데 큰 몫을 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외모로, 학벌로, 경제적인 조건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재단하는 일은 인종차별 못지 않은 또 하나의 뿌리 깊은 사회 문제이다. 다문화 가정이 늘어나는 시대에 우리들의 아이들이 주변의 어른들이 피부색으로 차별하는 일들이 요즘 부쩍 눈에 띈다. 사람이다. 우리는 모두 똑 같은 사람이다. 피부색과 외모, 학벌과 경제적 상황이 다르지만 우리는 모두 사람이다. 이 책은 다름을 인정하는 사회에서 우리는 또 다른 세상을 꿈꿀 수 있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사실 책 후반부로 이어지면서 마치 미국의 전형적인 가족주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드는 부분도 살짝 있었다. 그렇지만, 이 책이 주는 또 다른 메시지가 '희망'이라는 점이라는 생각을 하면 굳이 그렇게 생각할 것까지는 없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 책의 또 다른 특징은 그림작가의 에필로그가 담겨 있다는 점, 그리고 미국대통령 오바마와 인권운동가 제시 잭슨 목사의 글도 담겨 있다는 점이었다. 어떻게 보면 별 것이 아닐지 모르나 한국 서적, 그것도 동화책에 그들의 짧은 말이지만, 메시지를 담아 보려 애쓴 편집인의 노력이 돋보여 흐믓했다.

 

이 책을 읽다가 흥미로운 경험도 했다. 서울로 올라오는 기차 안에서 그리고 지하철로 이어지는 길에서도 눈과 손을 떼지 않고 이 책을 읽다가 문득 내 뒤에서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정확한 음성은 아니었지만 분명 나를 부르는 소리 같았다. 뒤를 돌아보니 동남아시아에서 온 듯한 작고 여려 보이는 여인이었다.

 

6호선 합정역에서 가양역을 가야하는 갈림길에서 어디를 갈지 몰라 사람들에게 물으려 하는데, 바삐 걸어가는 사람들 속에서 겨우 나를 발견한 모양이었다. 책을 읽으며 가는 사람이어서 선뜻 말을 건넬 용기를 냈던 것일까?

 

"도와주세요."

"네?"

"죄송해요. 길을 몰라요."

"어디 가시는데요."

"가양역. 가양역"

 

어눌한 발음이지만 웃으면서 수줍은 듯 길을 묻는 그를 나는 돕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을 읽고 있던 터라 더욱. 나 또한 서울 지리에 밝지 못한 터라 스마트 폰으로 지하철을 검색할 수밖에 없었다.

 

"죄송해요."

"아니요. 괜찮습니다."

 

그 짧은 시간에도 그 여인은 한국말로 연거푸 죄송하다는 말을 건넸다. 검색할 필요도 없이 건너편 지하도로 내려가면 되는 거였다.

 

"아, 저쪽으로 내려 가시면 되네요."

"아,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네~"

 

낯선 이국땅에서 살아가는 저 여인도 분명 어떤 형태로든 차별과 편견의 대상이 되었을 거라는 생각에 나는

더욱 더 친절하게 대했다.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다시 들어 본 <검은 후드티 소년>은 좀 더 다르게 읽혔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제발 서로를 차별하지 않고 편견없이 대하며 살아가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지난해 읽었던 윌리암 피터스의 <푸른 눈 갈색 눈>을 떠올리며......

 

"오, 위대한 영이여. 내가 상대방의 모카신발을 신고 1마일을 걷기 전에는 상대방을 판단하지 않도록 자켜주소서"-인디언 수족(Sioux)의 기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