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환의 글쓰기 삶쓰기/2014년 교사일기

아이들과 크게 웃으며 손 잡은 날

갈돕선생 2014. 3. 4. 22:54

모처럼 다시 규칙적인 생활로 돌아갔다. 아침 6시 반에 기상. 7시 10분 학교로 출발 8시 20분 도착. 수업 여섯시간. 수업 마친 뒤 한 시간 뒤 연이은 부장 회의를 두 번이나 하고 나니 퇴근 시간. 긴장한 탓인지 피곤하기 보다 정신이 바짝 든다. 작은 학교 3년 휴직 2년을 거치다 보니 큰 학교 적응하기가 쉽지 않다. 다들 바쁘다. 아이들에게 집중해 바쁘기 보다 학기초 업무 정비로 바쁘다. 쿨메신저로 틈만 나면 날라든 쪽지가 오늘 하루만 해도 20통에 가깝다. 도대체 무엇과 누구를 위한 학교일까? 오후에 치른 부장회의에서 창체 시간 맞추기 퍼즐 논의로 30분을 보냈다. 아이들을 위한 시간이 아니라 교육부에서 내린 시수를 얼마나 수학적으로 배치하느냐에 집중하는 시간. 학교는 정말 죽어가고 있다. 이어진 학습준비물. 1인당 3만원을 어떻게 신청을 해야하는지 논의하는 시간. 기본 물품이 학교에 늘 구비돼 교사들이 그저 찾아가 수업만 하면 되는 시스템은 언제쯤 만들어질까? 새삼 지난해 방문한 북유럽 학교들이 마냥 부럽고 대단하다 싶다.

 

그럼에도 오늘 나는 수업시간에 한 치도 벗어나지 않고 아이들과 지냈다. 26명 한 명 한 명 눈빛을 놓치지 않으려 애를 썼다. 이름을 빨리 익혀야겠기에 더욱 그랬다. 다행히도 오늘로 모든 아이들의 이름을 거침없이 부를 수 있게 됐다. 오늘도 어제에 이어 서로의 이름 맞추기 게임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어 과거와 미래의 인생곡선을 그리며 아이들의 숨은 이면을 보기 위한 활동을 했다. 꽤 많은 아이들이 과거에도 평범했고 미래에도 평범한 삶을 살거라는 그림을 그린다. 그야말로 스펙터클한 이야기를 찾아보기 힘들다. 아이들에게 꿈이 없다고 어른들은 조급해 하지만, 아이들의 꿈과 의욕을 꺾는 것은 오히려 어른들 탓이 크다. 교실 속에 가두어 놓고 공부만 잘 하길 바라는 어른들 밑에서 어찌 우리 아이들이 건강한 꿈을 갖기를 바란단 말인가. 자신의 과거와 미래를 그려내는 동안에도 농담을 걸며 아이들과 친해 지려 노력을 했다. 뜻 밖으로 호응이 크다. 내 말만 떨어지면 웃는다. 다행이다. 서로가 마음을 열 준비가 되었다는 증거다.

 

서로의 탐색을 마쳤으니 이제 내일부터는 본격적으로 교과공부에 들어간다. 공부하는 법, 공책 쓰는 법을 익히고 공부가 왜 필요한지를 생각해 보는 것으로 또 하루를 보낼 작정이다. 오늘 아침 아이들이 부모님으로부터 받아온 설문지를 훑어 보니 열의를 보인 편지에 꽤 많은 어머님들이 큰 호응을 해주셨다. 그분들을 실망시키지 않도록 꾸준히 일 년을 보낼 생각이다. 어제 아이들이 쓴 설문에 선생님이 때리거나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화를 내지 않았으면 한다는 글을 확인해 보았더니 다행히 심각한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대다수 아이들은 친절하게 관심 받기를 바랐고 교사들의 도움을 필요로 했다. 올해 내가 아이들을 만나가는 길이 어느 지점에 머물러 있어야 하는지를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오늘은 아이들과 헤어지기 전에 악수를 청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뭐냐며 쑥스럽다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마음을 열었던 탓일까? 겉으로는 싫은 말과 표정이지만 이내 달려와 웃는 얼굴로 장난도 치며 헤어지는 인사를 하며 손을 내민다. 오늘은 이렇게 아이들과 웃으며 손을 잡은 날이었다. 아이들이 또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