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가장 힘든 건, 학년부장이라는 무거운 역할보다 저중학년에 맞춰 있던 내 머리와 몸이 6학년을 맡으면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난 5년의 기나긴 휴식기(?) 탓만은 아니다. 내가 고학년을 선택한 까닭도 이 때문인데 막상 부딪혀 보니 만만치 않다. 오히려 두렵고 걱정이 앞선다. 내가 정말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학급운영과 수업도 저학년에 맞춰 움직이던 흐름과 상상력에 멈춰 도무지 고학년에서는 어떤 상상력을 발휘해야 하는지 길을 못 찾겠다. 부득이 익히 알고 있던 선생님들의 실천을 책으로 영상으로 공부해 보고 따라 해 본다. 헌데 영 마땅치 않다. 지난 5년간 바뀐 내 철학과 맞지 않는 것도 있고 남의 것을 그대로 가져와 따라하는 내 모습이 맘에 들지 않는다. 괜한 건방을 떠는 것 같기도 하지만, 앞으로 당분간 내가 헤쳐 나가야 할 과제이기도 해 부담이 크다. 지난 일주일은 이런 부담과 괴로움, 두려움으로 부쩍 생각이 많아졌다. 자꾸 글을 쓸 게 아니라 차분하게 진지하게 고민하고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초등교사의 전문성은 6년의 전 과정을 통찰할 줄 아는 안목에서 더 빛을 볼 수 있을 거라 믿는다. 그래서 저중학년에 한동안 집중했던 나를 벗어던지려 고학년을 선택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다시 배우고 깨닫자였다. 내 철학에 맞지 않는 흔히 유행하는 실천 사례에 흔들리지 않는 나만의 상상력을 발휘하는 수업실천을 올 일 년 내내 고민하고 실천하자 마음 먹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앞서 실천한 마음에 들지 않은 사례라 해도 적용해 보고 내 것을 만들어야 한다. 밑바닥부터 다시 출발하자 마음 먹었다.
우리반 아이들과 만난지도 어느덧 3주의 끝이 보인다. 지난 2주간 나는 아이들을, 아이들은 나를 탐색하며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이었다. 앞으로도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내가 만난 아이들은 나이에 걸맞지 않게 순진하다. 마치 4학년처럼 행동하고 떠든다. 그 모습이 싫기 보다 오히려 보기 좋고 우습기만 하다. 하지만, 아이들의 학습태도에는 문제가 많이 보였다. 단순히 집중을 하지 않고 산만하다는 지점과 거리가 멀다. 아이들 글에서 무심히 드러난 삶은 학교는 그저 다니는 곳이고 공부는 학원에서 한다는 생각이 아주 깊숙이 뿌리 박혀 있다. 학교 수업은 대충 때우면 된다는 생각, 운동회와 현장학습, 학예회로 이어지는 흐름에 더 관심을 보이는 아이들을 보며 사토 마나부의 말처럼 '배움으로부터 도주하는 아이들' 그 자체였다. 그나마 학습에 의지를 보이는 아이들조차 점수에 민감하다. 이 모두 어른들 탓이었다. 대충 시간만 떼우며 가르쳐 왔던 교사들에게 적응돼 왔던 아이들, 오로지 시험 점수로만 아이들을 다그쳐 왔던 어른들. 무엇이 배움인지도 모른채 살아온 지난 5년의 세월 속에서 아이들은 이미 망가져 있었다. 이를 회복하는 일이 쉽지 않아 보인다. 앞으로 1년 내가 변화시켜야 할 지점이요, 과제다.
오늘 윤길이가 생활글을 써왔다. 집에서 키우는 '다육식물'에 관한 것이었는데, 이름을 '다육'이라 지었고 키우는 맛이 제법 쏠쏠하다는 이야기였다. 윤길이가 써온 글 속 '다육'이가 궁금하다는 짧은 답글을 생활글쓰기장에 써 놓았던 걸 잊지 않고 기억하다 세 시간 전에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어 내게 보냈다. 조용하고 말 수 적고 자그마한 체구의 윤길이를 늘 잊지 않겠다고 수업시간에도 신경을 썼는데, 이렇게 반갑게도 사진과 함께 보여드리겠다며 문자를 보낸 윤길이의 마음이 참으로 정겹다. 내 작은 관심을 놓치지 않은 이 녀석과 올해 잘 지내기를 바랄 뿐이다. 오늘 미술 시간에 아이들과 광목천에 사포 위에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린 작품을 다리미로 녹여 스며들게 하는 작업을 오랜만에 해 보았다. 무척 신기해 한 아이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는데, 윤길이에게 오늘 미술시간 이야기를 글로 써주면 고맙겠다 전하니 그러겠다 한다. 늘 생각하는 거지만, 학급은 운영하는 게 아니다. 교사가 아이들 곁에서 살아주는 거다. 곁에서 살아주면 아이들은 시간 차가 있지만, 교사의 마음을 알아준다. 교육은 아이들 마음을 얻어 가르치는 게 아니라 서로에게 마음을 주어 교사와 아이가 서로에게 배우는 것이다. 이런 마음으로 3월의 마지막 주를 어떻게 보낼 지 준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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