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4년 전 <4천원 인생 _ 열심히 일해도 가난한 우리 시대의 노동일기>를 읽었던 때의 충격은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는다. 우리가 흔히 찾는 감자탕집에서 힘들게 일하는 하루살이 노동자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고속도도로를 타고 창문 밖으로 보이는 공장에서 일하는 단순노역자들이 어떻게 일을 하며 고통스럽게 사는지 나는 잘 알지 못했다. 너무도 쉽게 노동의 신성함을 이야기 하고 노동자들의 인권을 얘기했지만, 정작 그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나는 사실 아무것도 몰랐다. 그 책을 읽은 이후, 비정규직으로 하루하루를 버텨가는 내 주변의 노동자들에게 나는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그것 뿐이었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만나는 교사지만, 참혹한 우리네 노동현실을 어린 아이들과 어떻게 나눌지, 그들의 미래일지도 모를 노동현장에 대해 어떻게 전달해야 할지 여전히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게 부끄럽기만 했다.
그러던 차, 교육공동체 벗에서 나온 <십대 밑바닥 노동>을 뒤 늦게 읽고는 정말 어찌할 바를 몰랐다. 비청소년 노동자들의 4천원 인생과 또 다른 가혹하고 잔혹한 노동현장에서 단지 어린 청소년이라는 것만으로 제대로 대우도 처우도 받지 못하고 하루하루 삶을 이어가는 아이들의 삶을 어찌해야 할지 당황스러웠다. 호텔에서 알바를 경험한 청소년 혜정이, 택배노동자로 짧은 하루를 보낸 가람이, 이벤트 키다리 피에로로 살아가는 민관이, 배달대행업체의 실체를 깨닫게 해 준 원석이. 이들이 알바현장의 실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면, 고군분투 알바기를 풀어낸 건진이, 청소년임을 숨기며 위장 취업해 살아가는 서정이, 기초생활 수급 가정 청소년 경수의 노동, 탈가정 청소년의 홀로서기를 처절하게 보여준 효진이에게서는 이 시대를 밑바닥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 책을 계기로 나는 이런 저런 가정사로 가출과 취업을 해야 하는 청소년들에 대한 시선을 새롭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물론 연민과 동정의 시선이 아닌 그들을 실제로 도울 수 있는 길이 있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상황에서 적극 나서야겠다는 생각도 해 보았다. 그 까닭을 굳이 내가 풀지 않아도 이 책 끝자락에 아주 뚜렷하고 명쾌하게 써 놓았다.
“청소년 노동은 노동 현장에서 밑바닥을 차지하고 있기에 청소년 노동자의 ‘밑바닥 노동’을 끌어 올리는 일은 전체 노동자의 인권과 사회 전반의 존엄을 끌어 올리는 일이기도 하다. 생애 최초의 노동을 경험하는 청소년들이 노동을 어떻게 경험하고 노동에 대한 어떤 의식을 갖게 되느냐도 중요한 문제다. 가장 주변화된, 가장 밑바닥에 위치한 청소년 노동 문제에 사회가 관심을 기울여야 할 이유이다."
최근 진보교육감을 위시해 혁신학교 바람을 타고 창의적인 수업, 배움중심의 수업, 아이들 눈으로 보는 수업, 수업혁명을 저마다 외치고 있다. 그러나 때때로 <십대 밑바닥 노동>이나 <4천원 노동>과 같은 삶을 만나게 되면 도대체 우리가 하려는 수업이 무엇인지 초점을 찾기가 어렵다. 핵심역량이라는 용어를 써가며 창의적이고 진취적인 사고를 키워갈 수 있도록 아이들을 교육과 수업을 한다면 정말 이 세상은 정말 달라질 수 있을까? 아이들의 삶이 달라질 수 있을까? 진정 우리가 하는 수업이 여전히 바른 방향인지, 우리가 만들려는 학교는 무엇을 꿈꾸고 있으며 우리 교사들은 어떠한 사회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고 해야 하는지 다시금 생각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십대 밑바닥 노동>에는 유하라는 청소년이 쓴 ‘학교에서 배운 것’이라는 시가 나온다.
인생의 일할을
나는 학교에서 배웠지
아마 그랬을 거야
매 맞고 침묵하는 법과
시기와 질투를 키우는 법
그리고 타인과 나를 끊임없이 비교하는 법과
경멸하는 자를
짐짓 존경하는 법
그중에서도 내가 살아가는 데
가장 도움을 준 것은
그런 많은 법들 앞에 내 상상력을
최대한 굴복시키는 법
학교에서 배운 것과 사회가 일치하지 않는 상황도 있지만, 학교의 문화와 구조가 사회의 문화와 구조를 그대로 반영하고 강화시켜 나가는 것 같아 서글프고 안타깝다. 26년 전인 1989년. 참교육을 외치던 교사들의 처절한 투쟁이 오늘날 학교와 사회에 무슨 변화를 가져왔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앞으로 20년 뒤에는 적어도 이런 책들이 다시 발간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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