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책은 내가 논문을 쓰고 난뒤, 다시 책을 만드는 작업에 들어설 시기에 추가로 읽어야 될 책목록을 뽑아 보던 중, 그리고 각주의 연결고리를 찾아가던 중 발견한 책이었다.
일단 '대안교육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에서 정유성이라는 인물을 접했고, 내 연구가 '대안교육'에 관한 것이었기때문에, 더구나 그것을 얘기해줄 우리 나라의 몇 안되는 대표적인 학자였기 때문에, 이 책을 기꺼이 구하게 되었다.
그런데, 알고보니 이 책은 남성이 양성성을 가져야 하며, 남성을 둘어싼 일체의 이데올로기와 가부장적인 조건과 요소들과의 결별을 선언을 해야 한다는 일종의 남성학 아니 성평등을 주창하는 책이었다. 당시 나는 먼저 이 책을 구해 놓고 난 뒤, 대충 훑어 보고는 내가 필요한 부분이 없다고 판단해서 읽기를 미뤄 두었던 책이었다.
헌데, 최근 책장을 정리하다 우습게도 책표지 그림이 남근을 상징하는 목각작품이었다는 것을 그제서야 발견하고 성적 호르몬이 작동했던가 몰라도 한 번 다시 읽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책두께도 100여쪽에 불과해서 읽을 책을 몇 권 주문했는데 그 책이 오기 전까지 읽어보자는 생각으로 손에 들게 됐다.
우선 책 이야기를 하기 전에 이 글을 쓴 정유성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내가 대학원 공부를 하면서, 아니 구체적으로는 논문을 준비하면서 이 사람의 글을 거의 빠뜨리지 않고 읽어야 한다는 강박관념과 나름의 존경심으로 흠뻑 빠져들었던 기억이 난다.
'대안교육이란 무엇인가'라는 작은 책을 펴내서 우리에게 우리가 당연시했던 공교육에 의문을 제기했던 그의 글은 이내 교육사회학도들에게는 반드시 읽어야만 하는 책으로 이미 다가서 있다. 이제는 신문지상을 넘어서서 우리시대 문화비평가이자, 성평등주의자, 대안교육 전문가 등으로 방송을 넘나드는 그를 우리는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으며, 나는 그를 그저 그런 정도로만 알고 있을 것 같았다.
헌데, 우연하게도 나는 이 책에서 그가 직접서술하고 출판사가 언급한 글에서 남성으로서, 가장으로서, 선생으로서 살아온 그의 모습을 간접적으로나마 알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특히, 책 표지 안쪽에 그의 이력은 학력과 연고와 실적에 매달리는 흔히 보는 교수들과는 달리 그가 살아온 삶을 짧게 서술하는 식에서 일단 눈길을 끌었고, 이 책의 후기에서는 이른바 우리네 '남성'으로서 길러져 온 자신의 삶의 모습과 과정,뼈아픈 현실과의 교감과 실천의 과정을 비교적 진솔하게 담아내고 있어서 보는 이들로 하여금 책의 내용을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이제 책 이야기를 간단히 해 보자.
이 책은 본인이 일종의 연구서라고 하지만, 정유성 특유의 걸쭉한 재담 넘치는 글재주와 이론과 체험이 어우러진 문체에서 더 이상 이 책은 연구서의 답답함과 지루함을 벗어 던지고 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고, 그의 글솜씨와 우리 말을 살려쓰려는 노력은 매우 존경할만 했다.
총 3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장 남성문제란 무엇인가, 2장 남성은 누구인가, 3장 남성담론이 그것이다. 정유성은 이 책을 통해서 '지식인들은 날마다 계급적인 의미의 자살을 꾀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한 파울로 프레이리의 지적을 인용하며, '남성들은 날마다 '젠더(gender)' 즉, 사회적 성적 의미의 자살을 꾀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문구를 만들어 내며 가부장적 남성의 모습을 보여주는 우리네 남성문화에 대한 단절을 요구하고 있다.
나아가 진정한 남성상은 올바른 아버지 상을 정립하는 데 있으며 이 시대의 아버지(남성)는 적극적으로 부성애와 모성애의 조화를 발견하고 실천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즉 남성에게 양성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으로 그는 잘못된 오해와 편견 내지 그릇된 유행풍조를 지적한다. 즉, 최근의 남성에 대한 희망과 유행, 풍조들은 좋은 아버지와 남성상을 자식과의 관계와 가정에만 국한시켜 다만 평등하고 창조적으로 꾸며가는 가족 이기주의적인 남성만을 얘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진정 올바른 남성상, 아니 아버지는 동시에 열린 남성, 평등한 사람이어야 하며 기족은 단순히 가장 가까운 삶터, 재생산의 장 이상의 의미를 가지게 됨을 주장한다. 그것은 언제나 최소 단위의 사회일 뿐 아니라, 달라지는 세상에서 가장 먼저 그 변화를 느끼고 또 변모를 모색하는 실천의 장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그 실험과 실천에 앞장서는 아버지만이 좋은 아버지이며 또 거듭난 새로운 아버지일 수 있다고 그는 결론짓는다.
나아가 그는 이러한 남성문제를 제기하고 그 문제를 풀어나가는 것이 단순히 여성평등을 주창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진정, 우리네 삶을 되살리는 운동이 되는 것이요, 공공영역과 가정 영역의 가름과 나눔, 따로와 끼리의 문화를 극복하고, 권력지향적이고 가부장적인 남성문화를 자율적이며 유연한 남성문화로 변화시켜 궁극적으로 진정한 사람을 위한 세상이 온전히 우리 곁에 함께 할 수 있음을 역설한다.
이 책에서 나는 정유성 그도 이런 글을 쓰기까지 많은 경험과 시련, 그리고 내외적 갈등, 세상의 편견 속에서 버텨올 수 밖에 없었음을 솔직히 인정하는 부분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밖에서는 여성평등과 그릇된 남성문화의 해악을 지적하고 현실참여를 하고 있었으나 집에서 보이는 자신의 이중적인 삶의 모습에서 또 다시 자신을 죽일 수밖에 없었던 그 과정은 이 글을 읽는 독자에게 더 매력적으로 다가설 수 있을 것 같다.
한 여자의 남편으로서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나 자신 나름대로 그들에게 충실하려 애쓰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이래저래 세상의 눈을 생각하며 살았던 내 모습을 돌이켜 보며, 건강한 남성상과 아버지상을 내 스스로 세우기 위해, 나의 '젠더'를 실시간 죽여야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끝으로 이 책이 혹 남성만을 위한, 혹은 여성만을 위한 책으로 오해를 살까 염려되어 말하고 싶은데, 결코 그렇지는 않다. 결혼은 앞 둔 우리 맥 여성들, 그리고 이미 결혼한 맥 여성들, 그리고 몇 몇 남성들에게 꼭 한 번 읽기를 권하는 책이다. 나중에 우리들이 만났을 때 음담패설이 아닌 진솔한 성담론이 우리들의 입에서 터져 나오길 기대하며 이만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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