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돕이야기 만들기/읽은 책 들려주기

[스크랩] 한주미의 발도르프 학교 체험기 '노래하는 나무'를 읽고......

갈돕선생 2005. 12. 29. 22:28
제목 없음

  그 언젠가 '무슨 무슨 환경파수꾼'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써 냈던 김용근이라는 강원도 속초지역 초등학교 교사가 어느 순간 발도르프에 미쳐 산다는 얘기를 들은지도 꽤 오래됐다. 방송을 통해 8년간 담임제를 실시하고 손으로 하는 수공예, 목공예, 인형만들기, 그림 그리기 따위의 학습을 중심으로 새로운 대안교육을 모색하는 모습을 유행인양 한동안 방송에서 떠들어대던 기억도 꽤 오래됐다.

   그 와중에 나는 대학원이라는 델 갔고, 들어갈 때부터 막연하게 무조건 대안교육은 반드시 공부하고 나오리라 생각했던 터라, 늘 내 머리 속에 발도르프는 곁에 있었고, 관련된 책은 지금도 내 책장에 하나도 제대로 읽히지 않은 채로 6권이 꼽혀 있다. 간디학교를 대안교육의 연구대상으로 삼으면서 발도르프에 대한 관심은 잠시 저 멀리 두었던 것.

   하지만 대학원에 합격하고 1정 연수를 받던 중 발도르프 학교에서 체험을 하고 공부까지 하고 온 한주미라는 사람이 쓴 책이 발간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언젠가 그 책을 꼭 읽어봐야지 하고는 그렇게  5년의 세월을 흘려 보냈다.

 그 책을 나는 얼마 전에 주문을 하여 받아 보고는 읽기 시작했더랬다. 순수하고 겸손하며 조용하지만 나름대로 열정적인 한 젊은 여인의 체험담에 이끌려 방학이 시작되자마자 이틀만에 읽어 버렸다. 나 또한 늘 생각만으로는 경계했던 발도르프에 대한 방법론적인 적용에 대한 문제에 대해 이 책의 저자 한주미씨도 줄곧 지적하였고, 그러한 시각에 더 이끌려 이 책을 더 쉽게 놓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랬는지 내가 마음에 들었던 부분을 줄을 쳐가며 읽었고, 그 부분은 또 다시 내가 내 학급과 내 교육관과 끊임없이 연관시켜 나가야할 숙제가 되리라는 생각을 해 댔다. 이제 나는 내가 줄을 쳐가며 읽었던 이 책의 몇 가지 행간의 의미들을 다시 살펴보면서 좀 더 부연 설명을 해보고자 한다.

  •  우리나라에서 몬테소리나 프뢰벨 교육이 '수입품 교육 시장 형성'에 지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을 곰곰히 떠 올려 본다.

    - 이와 같은 지적이 발도르프 교육에게 주는 의미는 크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면 이에 못지 않게 발도르프 학교의 학습결과물인 인형제작에 필요한 여러 가지 재료과 목공예에 필요한 재료까지 판매하는 걸 보고 쓴 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었다. 물에 물고기는 없고, 수초만 무성하다더니, 발도르프 철학 이전에 방법적인 적용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 같아 영......

  • 포근함이 발도르프 교사의 가장 기본이 되는 품성이며.....
  • 일을 함으로써 우리의 사고와 강의실에서의 배움이 손발을 통해 표현되고 또 신체가 자연과 만나 균형을 갖게 된다는 이야기.....
  • 눈으로 정확하게 보라, 그리고 눈으로 본 것을 가슴으로 느껴라, 그리고 느낀 것을 정직하게 손으로 표현하라(중국 격언)
  • 일하면서, 의논하면서, 그리고 노래를 부르면서 하나됨을 서로서로 확인하는 것, 이것이 바로 삶과 배움에 대한 발도르프 교육의 접근방식이라는 것을 이해하는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설거지, 전체모임, 함께 노래 부르기를 하며 서로를 이해하고 돕는 방법도 알게 되고 이것으로 나는 학교와 학급을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에 대한 전망을 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뜻있는 것은 열심히 그리고 즐겁게 살아가는 나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 이상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발도르프 교육이 단순히 그림을 그리고 수공예품, 목공예품, 유리드미와 같은 방법론에 귀착되는 것이 아니라, 보다 근본적인 것은 삶과 공동체에 대한 철학, 나아가서는 교육을 담당하는 이의 삶까지도 변화시키는 새로운 삶의 철학에 있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이상에서 열거한 상황은 소박하게라도 우리네 학교에서 학급에서 실천 가능한 것들이 아닌가 말이다.

  • 자연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거기에는 생명의 리듬이 있다. ....(중략).... 그래서 교사 또한 리듬에 주의를 하여 아이들을 가르쳐야 한다. ....(중략).....모든 일에는 발달을 위한 일정 기간의 리듬이 필요하다. 나는 이것을 삶과 배움에 요구되는 시간의 리듬이라고 부른다. 아이들의 성장은 이런 시간의 리듬에서 기억과 잊어버림이 자연스럽게 교차되는 과정이다......(중략)...... 잘 조직된 하루하루의 수업 시간은 아이들에게 '하루'라는 시간의 리듬을 경험하게 한다.
  • 발도르프 교육에서는 '일년에 걸친 생명의 리듬에 따라 하루하루의 리듬을 조직한 시간 보내기'를 강조한다.

    - 자, 반성과 이해, 그리고 우리가 하는 일반적인 학급운영에 대한 믿음이 함께 느껴지지 않는가. 체계적이고 계획적인 교사의 준비는 아이들의 성장리듬을 촉진시킨다고 할 때, 잘 준비된 교사들에게는 자신의 방식에 대해 더욱 확고한 믿음을 가지게 될 것이며, 그 준비가 미흡한 이들에게는 더욱더 준비해야 할 용기와 반성의 그늘을 커다랗게 그려주고 있지 않는가. 우리들에게도 언제든지 발도르프는 있어왔다.

  • 선생님은 우리에게 그림 그리는 기술을 가르쳐 주시려고 하기 보다, 아름다운 세상 그 자체를 보고 느낄 수 있는 눈을 갖도록 하고 싶으셨던 것이다. .....(중략)....... 선생님께서는 우리가 사물을 잘 보는 눈과 마음을 가질 때 비로소 그 사물을 종이에 그대로 옮길 수 있다고 말씀 하셨다.
  • 나는 내가 그린 그림이 어떻게 보여질까라는 걱정에서 자유롭지 못할 때, 그림을 그리는 것 자체를 하나도 즐기지 못하고 또 발견의 즐거움도 갖지 못한다는 것을 느꼈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나와 사물의 대화라는 것을 이제야 발견하게 되었다. 그림은 이 대화를 하는 동안의 나의 감동을 드러내는 것이다. ...(중략).... 그래서 그림의 결과보다 그것을 그리고 있는 동안의 과정이 중요하다.

    - 우리는 이미 이호철 선생님의 '자세히 그림 그리기'를 알고 있다. 그 선생님이 발도르프 교육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책에 드러난 그분의 철학에 발도르프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말은 없었다. 그렇다. 우리네 교육에도 이렇게 자연스러운 변화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다시 말하지만, 중요한 것은 발도르프 교육방식이 아니라 철학이다. 이호철 선생님의 지도방식에도 자세히 관찰하기에 대한 의미가 열거되어 있고, 그 중요성이 이와 다르지 않다. 오히려 더 한국적이지 않던가. 나도 최근에 열심히 아이들에게 이 그림그리기 지도를 하고 있다. 다만, 내가 그리지 않아서 그게 큰 문제지만......

  • 에머슨 칼리지 발도르프 교사양성대학에 있는 발도르프 학교는 오전에 학교 전체가 아름다운 화음으로 뒤덮인다. 날마다 대개의 코스들이 아침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노래를 삼십 분 정도 부르고 시작한다. .....(중략)...... 노래를 부르며 아침을 밝게 맞았던 내 경험을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게 설명해 주셨던 선생님. 그래서 나는 노래 부르는 교사, 노래가 가득한 학교가 얼마나 삶과 배움을 아름답게 하는지를 자신있게 얘기하는 사람이 되었다.

    - 이호철 선생님의 학급운영 방식에는 오전 중, 점심 시간 이후 청소시간까지 음악을 틀어 놓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나 또한 아침마다 아이들과 수업 시간 전에 되도록 노래를 함께 부르는 시간을 갖거나 집에 가기 전에 꼭 이 과정을 밟는다. 즐겁지 않은가. 학교를 가면 노래를 부를 수 있다. 딱딱하게 아침자습거리만 해대는 교실보다 무언가를 쓰고 적고 하는 공부하는 교실보다...... 발도르프는 다만 이것이 옳은 과정임을 얘기해 주고 있을 뿐이다.

   이만큼.... 꼭 이만큼만 얘기하고 싶다. 재미있는 영화를 보는 이들 앞에서 다 얘기했다가는 눈총받기 쉽상이니. 다만, 이 책을 읽으면서 한주미라는 인물에 대해 나는 많은 존경심과 부러움을 가져 보았다.

   우선 에머슨 칼리지라는 곳에 선도적으로 나서서 발도르프라는 새로운 대안교육에 관심을 가지고 열정적으로 자신의 삶을 투여하는 모습이 그렇게나 아름다울 수가 없어 보였다. 그 배움의 일부를 자신의 사비까지 털어가며 한국에 전하려 했던 모습에서 순수한 그의 열정에 존경심이 간다. 아울러 만약 내가 가정과 조직의 굴레에서 잠시라도 벗어나 있을 수 있다면 나 또한 그런 경험과 모험을 해보고 싶다는 부러움이 솟구쳐 오르는 것을 감출 수 없다. 더구나 방법론쪽에 치우치는 인상을 주는 몇몇 발도르프 전도사들의 모습과는 다르게 순수한 경험의 일상들을 담백하게 펼쳐나가는 그에게서 진정한 발도르프인을 볼 수 있었다.

  아울러 한 가지 더 경계해야 할 것을 말하자면, 철학없이 교육방법에 치우치는 것만큼 위험한 것이 있으니 그것은 사회변혁에 대한 관심없는 좁은 교육중심사고라 하겠다. 발도르프이건, 몬테소리이건, 그 어떤 것이든 그러한 교육은 넓게는 세계화의 변화 속에서 좁게는 한국사회에서 드러내어 실천될 철학이며 방법이라 할 때, 일반 교육과 거리를 두고 차별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무관심으로 빠져드는 것은 또하나의 위험한 모습일 것이다. 발도르프 교육이 일반 공교육의 변화에 진정한 변화를 주려 한다면, 일반 공교육의 흐름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실천이 병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내 학급, 내 학교만을 생각하고 내 교육방식에만 매몰되어 진정한 사회와 교육의 변화를 꾀하지 못하는 우를 범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다.

  이글을 쓴 한주미씨가 교사의 노력만이 교육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얘기했었지만, 그러한 노력이 단지 교실과 학교에서만 머물고 개개인의 교사에게 주어지는 충성심과 양심, 책임감으로만 포장된 것에 의지한다면, 분명 한계가 있다는 것을 그도 배우고 익혀 나갔으면 하는 바람도 가져본다. 진정한 대안교육 실천가들은 이러한 시각이 분리되어 있지 않고 함께 조화를 이루고 있을 때라야만 그 존재의 의미가 더욱 커진다는 생각이다. 이와 같은 예는 이미 작년 간디학교의 투쟁에서 비단 간디학교라는 작은 대안학교에만 국한 되는 사안이 아니었음을 우리는 분명히 알게 되었다. 더구나 간디학교 교사들이 전교조 분회를 결성한 것은 이러한 인식의 고리와 함께 연관되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

  하지만, 끝으로 나 또한 발도르프 교육을 일부분만 알게 되었으므로, 더 공부를 하고 체득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한주미씨가 더 공부해야 할 부분이 있는 만큼 나 또한 더 공부해야 할 부분이 많다는 것을 인정함으로. 사실 난 지금 그 준비에 머리가 아프다.
 

 

출처 : 부산교대 맥
글쓴이 : 박진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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