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책 표지에는 다음과 같이 그 내용을 요약하고 있다.
"조선이 조용한 아침의 나라라고? 유흥계 호령한 무뢰배들, 투전 노름에 골몰한 도박꾼, 술과 풍악으로 일생을 보낸 탕자들, 반양반의 기치를 높이 든 비밀 폭력조직, 족집게 대리시험 전문가, 벼락출세한 떠돌이 약장수, 설렁탕 한 그릇에 배신한 도적...... 조선의 뒷골목 누빈 무명씨들의 생기발랄한 삶의 현장, 생활의 역사!"
우리는 흔히들 이런 비슷한 내용으로 혹세무민하는 책을 제목으로나마 접해 본적이 적지 않다. 이런 책을 접하는 이들의 태도 또한 가지 각색이다. 정사 아닌 야사에 관심을 가지고 흥미나 가십거리로 접해 보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아예 정사 아니면 얼굴조차 돌리지 않는 이들이 있고, 장삿속이려니 생각하고 서점에서 몇 쪽 읽어보고 그러면 그렇지 하고 발길돌리는 이들도 있다.
이 책 또한 이런 범위 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일반 독자들에겐. 하지만, 이 책은 딱히 그런 모습들만 그리고 있지는 않은 듯 하다. 그냥 야사들만 분야별, 영역별로 늘어 놓는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삶의 대한 관점과 역사의 궤를 이어주는 통찰력이 있어 보이고, 덧붙여 저자의 넉살과 익살이 함께 어우러지는 글솜씨에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쉽사리 민중이라는 말을 꺼내는 걸 거부한다. 그저 한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 중에는 이런 저런 사람들이 있고, 소외받고 억압받았던 이들에게도 인간적인 삶이 있지 않았겠냐 하는 상식에서 출발한다. 정사에 등장하는 대단한 인물들에 주눅든 우리 조선시대 뒷골목 인생들의 모습을 현재의 시각을 유지하면서 찾아내 톡톡 건드려 보는 저자의 재치에 가끔씩 터져나오는 웃음이 고맙기까지 하다.
그 내용을 간단히 살펴보면, 소설 허준에 가려진 조선시대 의술과 의료시설, 그리고 수만 백성들을 살렸던 이름없는 명의들이 무척 인상 깊었고, 당시 도적들의 조직과 구성, 투전노름에 날새는 지 몰랐던 양반들, 방송에서 주막이라는 형태로 왜곡하는 조선시대의 술집, 술주정, 술문화도 재밌었고, 타락과 부정으로 얼룰진 양반들의 잔치하며, 감동과 어우동이라는 시대의 여인에 대한 연민, 서울의 게토, 검계와 왈자, 시대사극에서 가끔씩 보는 화려한 빨간 복장의 별감들의 삶, 조선시대 탕자들의 모습은 조선이라는 나라를 다시금 보게 하는 재미난 읽을 거리였다. 이러한 읽을 거리 못지 않게, 책 편집 자체도 깔끔했고 적절한 삽화와 사진들이 책의 가치를 더욱 높여 주고 있었다.
우리는 지금 일등만이 기억된다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런 시절에 조선의 뒷골목 풍경들을 찾아보려는 저자의 의도가 무엇인지는 새삼 거론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역사란, 인간의 삶이란 그 시대 그 사회 구성원들의 작은 삶들이 엮어져 구성되는 총체라는 원론적 얘기를 다시금 꺼내지 않더라도. 한 시대를 살았던 하나 하나의 삶이 다 그 나름대로 가치있고 소중하다는 생각을 다시금 해 본다. 그것이 일등국민으로 사는 배부르고 등따신 이들에게는 하찮게 보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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