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학부모초청 공개수업날. 아침에 주섬주섬 부모님들을 맞이할 준비들을 챙겨 집을 나섰다.
수업보다도 수업 이후 부모님들과 이야기를 나눌 준비가 더 걱정이었다.
오늘 공개수업 전에 우리 학교에서는 독서교육과 글쓰기 전문가이신 백영현선생님을 초대했다.
200명 가까운 학부모님들이 참여를 해서 성황을 이루었다. 2년 전 뵈었던 백영현선생님을 막상 나의
추천으로 우리 학교에서 뵙게 되어 쉬는 시간 잠깐 올라가 말씀을 들었다. 그때 그 모습 그대로 변치 않는
생각으로 잔잔하게 어머님들에게 아이들과 책읽기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셨다. 너무도 진지하게
듣고 계시는 어머님들 모습이 참으로 보기 좋았다. 뜬금없이 교감샘이 강사가 너무 조용한 거 아니냐며
어머님들 정신없이 웃도록 하는 강사가 아니라며 딴죽을 건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무척이나 진지하게 듣던 어머님과 그렇게 만들었던 백영현선생님 모습을 그렇게 싸구려 취급하는 것이
정말 맘에 들지 않았다. 책이 무엇인지 교육이 무엇인지 과연 알고 있다면 그런 질 낮은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정말 화가 난다.
곧이어 수업을 했다. 단원도 공부할 문제도 붙이지 않았다. 괜히 부모님들 초대한다고 평소에 하지도
않던 걸 하는 게 이제는 더 이상 하기 싫었다. 국어수업을 공개수업 교과로 잡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공개수업 특성상 차분하게 진행되지 않을 듯 하여 놀이로 수업할 수 있는 수학을 선택했다. 짐작한 대로
아이들은 부모님들이 들어오시자 조금씩 흥분하기 시작했다. 난 평소와 다름없이 수업을 진행했고 조금은소란스러웠지만 아이들이나 나나 부모님들이나 잠시동안 즐거움을 느꼈던 수업이었지 않나 싶었다.
놀이를 곁들인 수업은 언제나 아이들을 더 이상 딱딱한 공부의 세계로 빠져들게 하지 않는다. 살아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놀이수업은 국어수업에서도 언제나 염두해 두어야 할 요소이어야 한다.
수업을 마치고 아이들을 돌려보내니 스무분이 넘던 부모님들 가운데 몇몇 분은 가시고 열 대여섯 분이 남아 수업참관록도 써 주시고 이야기도 들어주셨다. 지난 4월에 이어 오늘은 앞으로 어머님들과 학급운영을 무엇을 어떻게 하면서 보낼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는 시간으로 잡았다. 오늘 끝까지 남을 분들에게는 점심을 직접 대접해 드렸다. 담임이 어머님들 식사를 대접해 드리니 낯설어 하시는 분도 계셨지만, 더욱 더 가깝게 나를 대해 주시는 것 같아 기분도 좋았다. 우리 교사들의 상당수는 아직도
늘 부모님들에게 대접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과연 대접받을 일을 얼마나 하고 있는 걸까?
대접받는 교사가 아닌 대접하는 교사도 아닌 아이들을 맡은 교사로서 부모님들과 소통하고 싶은 교사로
나는 싼 국수를 사드렸다. 기분 좋게 국수를 맛있게 드시는 어머님들과 마실 차는 안 주냐며 너스레까지
떠는 어머님들 덕분에 분위기는 더욱 밝아졌다.
차를 한 잔 한 뒤로는 아이들 교육에 대한 이야기, 책 읽는 이야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말씀드리며 아이들을 어떻게 키울 것인지에 대한 과제를 던져드렸다. 지식채널 e에서 지난해 방영했던 '2007. 대한민국에서 초딩으로 산다는 것'이라는 영상도 보여드리며 다소 우울해지기도 했지만, 진정 아이들을 행복으로 안내하는 길이 무엇인지 어른들이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말씀도 드렸다. 엊그제 교과부에서 내년부터 초중고 학력결과를 인터넷에 공개하겠다는 소식에 어머님들은 정말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도 보여주셨다. 아직은 일방적인 소통이지만, 조금씩 나아지리라 믿는다. 이어 담임과 상담을 미처 하지 못한 어머님들과 약속 날짜도 확인하며 빛그림책 활동, 학급문집, 여러 학급활동에 대한 도움을 요청하기도 하면서 서로에 대한 믿음을 확인하고 마쳤다.
이따금 이런 자리를 마련하며 부모님들과 소통하려는 나에게 그렇게 해봐야 별달리 달라지는 것은 없을 거라며 너무 그런데 힘을 빼지 말라는 충고도 듣는다. 하지만, 어머님들에게도 말씀드렸지만, 공부와 경쟁이라는 한 가지 이야기들이 일방적으로 쏟아지는 이런 문화 속에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는 이야기를 해 드리는 것이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식은 결코 아닐 거라는 생각을 한다. 어머님들과 해어진 뒤, 토요일 밖에는 시간이 안 되는 하영이 어머님과 한 시간동안 더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이야기 속에서 하영이 어머님이 이러 저러한 내 생각에 공감을 표시해 주셔서 정말 고마웠다. 내 이야기를 들으며 참으로 많은 고민과 걱정을 하게 되고 정말 부모가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나더라는 말씀도 해주셨다. 내가 가지고 있던 책도 빌려 달라 하셔서 드렸는데, 앞으로도 조금 늦겠지만 꼭 학부모 모임에 오겠다는 고마운 말씀도 해주셨다. 교사가 바로 서 있으면 아이들과 부모님과 소통할 길은 있다는 생각을 요즘 부쩍한다. 그래서 가정방문과 한 분 한 분 만나는 상담을 앞으로도 내 학급운영에서 빠뜨리지 않을 것이다. 때로는 부침도 있고 실패도 있겠지만 이러한 소통없는 학급운영은 학급운영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토요일 오후 3시가 넘어서야 겨우 교실을 빠져 나왔다. 하지만 기분은 무척 좋았다. 정말 이런 기분 때문에 교사할 맛이 난다. 그래서 그랬던가 전교조 김해초등지회 조합원들의 체육대회가 열리는 장유 능동초등학교 길이 피곤하지 않았다. 다음주는 더욱 할 일이 많다. 좀 더 부지런해지자. 그래야 아이들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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