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 아침부터 무척 바빴다. 오늘은 아이들과 약속한 황토염색하는 날. 지난 주에 유성매직으로 밑그림을 그려 놓았던 손수건에 황토로 염색을 했다. 모둠별로 준비해 온 세숫대야에 황토를 풀고 물을 부어 각자 손수건에 황토를 묻혀 나가는 일이 순조롭게 진행됐다. 처음에는 질퍽한 황톳물때문에 손대기도 꺼려 하던 아이들이 어느새 손수건에 스며드는 황토색과 질퍽한 느낌을 즐기기 시작했다. 30분쯤 황톳물에 담궈 잘 베이도록 놔 두고 잠시 수학공부를 하다 현관 앞 수돗가에 나가 손수건에 묻은 황토를 털어내었다. 다음 말리기 시작했는데, 바깥에서 국어공부를 하고난 40분 뒤에도 마르지 않아 다림질은 부득이 내일로 미뤘다. 저마다 다른 손수건을 들고 즐거워 하는 아이들 덕분에 오전이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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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3시부터는 우리 반 어머님 네 분과 함께 토요일에 아이들에게 들려줄 빛그림책 공연 연습을 했다. 정욱이어머님이 제일 먼저 오시고 수진이 어머니, 동진이 어머니는 작고 귀여운 딸을 데리고 와서 참여를 해주셨다. 뒤늦게 일보고 오신 고은이 어머님 덕분에 무사히 연습을 할 수 있어 좋았다. 대본을 보신 뒤에는 각자 배역을 맡았다. 처음에는 무척 쑥스러운 듯 대본을 읽었지만, 조금씩 감정도 넣어가며 성심껏 읽어주셨다. 그때 정욱이 어머님이 표준말이 영 입에 맞지 않으신 듯,
"선생님, 사투리 써도 됩니까. 서울말 쓸라카니 간질거려서 못하겠네예."
"하하하, 편하신 대로 하이소. 더 재밌겠는데요."
"저도 연수 받을 때는 발음과 억양을 배웠는데, 제가 윗지역 사람이다 보니 경상도 사람이 발음과 억양을 지도 하는 걸 보고 조금 우습기도 했습니다. 물론, 실감나게 읽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어머님들이 이렇게 함께 참여해서 열심히 해주시는 게 정말 아이들에게 더 좋은 거 아니겠습니까."
이 부분에서는 참여하신 어머님들도 고개를 끄덕이시며 공감을 나타내셨다. 이윽고 두 번째 연습을 했을 때는 조금씩 익숙해지시자 말이 점점 빨라지셨다. 토요일에는 좀 더 천천히 하고 뚜렷하게 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하자 말씀드렸다. 토요일을 기대하시며 돌아가시는 어머님들이 참으로 고마웠다.
어머님과 빛그림책 공연 연습이 끝날 때는 퇴근시간이 다 된 시각이었다. 오늘은 심수환 선생님의 미술연수가 있어 곧장 지회강의실로 향했다. 장병학샘이 오늘 바빠 조금 늦는다고 해 내 일거리는 그만큼 많아졌다. 더구나 어제 지회강의실을 썼던 분들이 제대로 정리를 해 놓지 않아 40분간 내내 일을 해야만 했다. 지회 에어컨을 내가 처음으로 켜지 않았나 싶다. 그때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황대경어머님이셨다. 이집트로 4년간 떠나있을 예정이라는 어머님은 내일까지 있어달라는 내 부탁을 결국 들어주지 못하셨다. 갑작스러운 집안 일로 서둘러 대경이를 데리고 서울로 올라가게 돼 내일부터 학교를 나오지 못하게 됐다고 한다. 아침에만 연락해주셨어도 대경이랑 이제 다시 못보게 될 대경이랑 인사라도 제대로 나눌 것인데, 정말 섭섭했다. 서운했다. 내일 정식으로 인사를 나누자고 했는데, 대경이 한 번 업어주기로 했는데, 난 정말 섭섭해서 전화도 차갑게 받았다. 어른들이야 하찮은 일일지 모르지만, 지나고 나면 별 것 아닌 이별의 과정이 정말 대단한 추억으로 남을 수도 있을 텐데 정말 정말 아쉬웠다. 귀엽고 사랑스러웠던 대경이를 내일부터 난 보지 못한다. 정말 아쉽다. 정말 아쉽다. 마음 한 켠 아려오는 느낌, 참으로 오랜 만에 느끼는 감정이었다. 많은 일을 했던 오늘 하루. 그만큼 아쉬움도 컸다.
아래 사진은 오늘 황토염색하던 대경이 모습(왼쪽)이다. 활짝 웃음 짓던 대경이를 나는 평생 보지 못할 것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내 볼에 뽀뽀를 해 주던 대경이. 부디 건강하게 자라렴. 착한 어른으로 자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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