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지난 주에 하지 못한 투명우산 꾸미기 활동을 해 보았다. 절기상으로도 맞고 즐거운 생활 시간 대체 수업으로 해 볼만 것을 생각하다 이 활동이 적당하다 싶어 준비해 보았다. 투명우산 하나에 1300원 정도 하는데, 인터넷으로 구입을 일찌감치 해 놓았었다. 그런데 화물연대 파업으로 해당업체에서 배송을 늦추더니 어제야 겨우 도착을 해서 다행히도 6월을 넘기지는 않았다.
받아본 우산은 짐작했던 대로 허접했다. 그저 아이들 꾸미기용 우산으로 만족해야 했다. 가는 비 정도는 막아낼 수 있을 것 같기도 한데, 그래도 우리 아이들 무척 신나한다. 6월을 보내며 내가 아이들에게 주는 선물이었는데, 아이들이 좋아하니 그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아이들에게 계절감이 드러날 수 있도록 그림을 그리라고 하고 교실 밖으로 나섰다. 아이들은 교실 밖만 벗어나면 무척 신나한다. 매직과 네임펜을 든 아이들은 운동장 옆, 조회대 위, 씨름장 옆 저마다 원하는 곳에 앉았다. 거리가 꽤 있었던 덕분에 난 운동장을 서너번 가로지어 왔다갔다 해야 했다.
수박을 그리는 아이, 재미난 인물을 그리는 아이, 태극기를 그리는 아이, 파도와 물고기를 그려가는 아이. 내용이야 어떻든 아이들은 꾸미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두 시간을 보냈다. 오늘 1, 2교시에 기말시험을 치렀다는 걸 까마득히 잊고 우산 꾸미기에 빠져든 아이들. 이런 아이들에게 학력향상이니 영어몰입이니 하며 말을 꺼내는 생각없는 어른들을 어떻게 해야할까? 이런 통합교과라 일컬어지는 즐거운 생활과 슬기로운 생활 교과마저 지필시험을 치며 시험으로 몰아가는 철없는 어른들을 정말 어떡해야 할까? 세상은 갈수록 살기 힘들어져가고 이 어린 아이들 삶마저 자기 삶을 찾지 못하고 방황할 것 같아 걱정이 앞선다. 교사가 바로 서지 않고서야 사회가 바로서지 않고서야 결코 바뀌지 않을 일들이다.
어느덧 완성된 투명우산들을 들고 사진도 한 장씩 찍어 보았다. 오늘은 기말시험날이 아니라 투명우산을 꾸몄던 하루였다. 즐거웠던 하루가 됐다. 사실, 오늘은 또 하나의 즐거움도 있었다. 아이들에 뒤늦은 봄문집을 나눠준 날이었다. 한창 기대하던 아이들 눈빛은 놀라움과 기쁨으로 가득한 얼굴들이 됐다. 집에 돌아갈 시간에 나눠주었는데, 한동안 손에서 놓질 않는다. 더욱 놀라웠던 것은 어머님들의 반응이었다. 중고학년에서는 겪어보지 못했던 반응들이 문자와 전화로 이어지기 시작했다. 기대이상이었다며 아이들에게 깊은 추억거리 남겨주어 고맙다는 어머님들의 전화때문에 살짝 기분이 들뜨기도 했다. 차분하고 고만고만했던 중고학년 어머님과 달리 적극적으로 감사의 표현을 하는 어머님들 덕분에 갑자기 난 대단한 교사가 되고 말았다. 아직도 세 권의 문집이 남았는데, 덕분에 짐이 한층 무거워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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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서울로 올라간다. 대안국어교과 집필자 회의에 이어지는 대표자 회의까지 빡빡한 일정에다 하루를 넘기고 내려올 생각이라 피곤이 벌써 몰려 드는 듯 하지만 오랜만에 보고싶은 사람들 많이 볼 수 있을 것 같아 기분은 좋다. 내일은 내가 좋아하는 비도 엄청 온다는데 모쪼록 안전한 여행길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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