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이홍우라는 사람을 싫어했다. 그렇다고 이 사람의 책을 한 권이라도 제대로 읽어봤냐 이 사람의 강연을 들어본 적이나 있냐고 누가 묻는다면 딱히 할 말은 없다. 그런데도 나는 이 사람이 싫었다. 보수적이고 우파적인 색채가 진할 거라는 선입견이 내 머릿속을 지배했기 때문이다. 고리타분한 철학으로 강단에 머무는 답답한 학자들을 나는 정말 싫어한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내 주변에서 이 사람 얘기가 들렸다. 들을 얘기가 있다는 거였다. 교육의 목적과 우리가 하려하는 교육행위의 상관관계를 풀어줄 나름의 논리와 학문적 깊이가 있는 사람이라는 거였다. 국어교과와 대안교과서를 생각하는 모임사람들의 권유도 있고 우리말대학원에 강의도 했다는 얘기를 들으면서 조만간 이홍우라는 사람의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막연히 했다. 그러다 이번 여름 세 권의 책을 손에 쥐었다. 그 첫번째가 바로 <교육의 목적과 난점>이다.
개정과 증판을 계속 해오던 책이어서 두께가 꽤 나갔는데, 이홍우라는 사람의 특징적인 어법이 글을 읽는 나에게는 무척 불편하기만 했다. 장황한 사전설명들이 논의의 핵심을 이해하는데 어렵게 하거나 시간을 끌어 일종의 강의록이기도 한 이 책을 읽으면서 수강자들이 꽤나 졸아겠다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이 사람에게 심취하지 않은 이상, 참을성을 가지고 끝까지 집중해서 강의를 듣기란 힘겹지 않았겠냐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나마 교육에 대한 목적에 대한 이홍후의 뚜렷한 신념을 읽어냈다는 점에서 작은 소득이 있었다고 조심스레 자평을 해 본다. 교육의 목적이 정답을 아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갖게되는데 있고 얼마나 아는가 하는 양적인 측면이 아니라 내가 얼마나 모르고 있는가를 확인하는데 있다는 그의 생각은 정말 옳고 옳은 말이다 싶었다. 교과를 보는 시각도 지식을 습득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교과로 세상을 이해하고 교과에 대한 안목을 키워야 한다는 그의 생각도 매우 존중받을만 했다.
하지만, '11장 제도의 아름다움'에 비친 그의 비뚤어지고 편견에 가득찬 교육관과 사회관은 이 사람에 대한 그동안의 내 편견이 편견만은 아니었다는 점을 확인시켜 주었다. 학교 무용론을 외쳤던 이반 일리치를 학문적 식견도 없는 혈기가 앞서는 사회운동가로 치부하는 것이라든지, 현 제도를 인류의 지혜의 축적된 산물로만 보려는 그의 계급적 한계는 이홍우라는 사람을 어느 정도까지 내가 받아들여야할지 고민하지 않게 해주는 결정적인 부분이었다. 강단에 묶인 학자의 한계가 명확히 보여 내심 씁쓸했다. 물론, 늘 내 마음에 드는 학자들의 이야기만 읽어낼 수는 없다. 그래서도 안 될 것이다. 이 사람의 책을 읽으면서 다른 학자들이 얘기하지 못한 부분을 읽어낼 수 있어 한 편 고맙기도 했다. 그래도 여전히 남는 씁쓸함은 그의 나머지 책 두 권을 읽는 내내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을 것 같다. 다음 책은 좀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으면 좋겠다. 솔직히 이 책을 다 읽지 못하고 책 중간을 넘어서는 장황하게 늘어 놓은 부분은 건너 띄어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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