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돕이야기 만들기/읽은 책 들려주기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갈돕선생 2010. 9. 2. 21:16

정의란 무엇인가

 

철학논쟁 가운데 정의와 도덕이 핵심개념인줄도 모를 정도로 나는 철학이라는 학문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살아왔다.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 밴덤, 칸트 따위의 이름만 들어도 따분했고 윤리시간에 성적을 높이기 위해 나는 그들의 이름과 기본 사상을 아무런 뜻도 모른채 어린 시절 무조건 외워야만 했다. 그러던 중 대학시절 마르크스를 만난다. 마르크스는 달랐다. 형이상학적이지도 관념적이지도 않았다. 그의 철학은 간단명료했고 프롤레타리아의 시각 즉, 약자의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어쩌면 매우 휴머니즘적 철학이었다. 때로는 너무 극단적이고 과격해 보이기도 했지만, 지금도 마르크스의 철학은 약자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려는 내 삶의 자세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

 

내게 철학은 이렇게 딱딱한 대학교재 속 철학과 현실주의적 철학으로 남아있었다. 그러던 차에 두어달 전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로 토론하는 방송을 보았다. 하버드 대학에서 철학강의로 20년간 명성을 얻고 있는 한 석학의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딱딱하게만 여겨졌던 철학을 일상생활을 소재로 명쾌하고 유쾌하게 지적유희를 살리며 강의를 한 내용을 책으로 엮어냈다는 점에서 언제 한 번 꼭 읽어보겠다 마음을 먹었다. 그러다 여름방학에 읽을 거리를 찾다가 마음이 끌려 결국 이 책을 읽고 말았다. 저자의 이력도 흥미롭다. 27세에 최연소 하버드대교수가 되고 29세에 자유주의 이론가의 대가인 존 롤스의 정의론을 비판하며 공동체주의의 세계 4대 이론가이자 정의분야의 세계적인 학자였다.

 

책의 흐름은 그의 강의방식과 다르지 않았다(책속에는 그의 강의가 20여분 녹화된 시디가 담겨있다). 풀어가려는 주제와 관련한 실제 이야기와 딜레마들을 꺼내놓고 독자들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한다. 당신은 어떤생각을 하고 있고 어떤 입장을 취하려 하는지를. 그리곤 독자의 생각과 입장 또는 우리가 상식이라 여겼던 생각들을 여지없이 깨부숴 버린다. 마치 강의를 듣고 있는 듯한 저자의 서술방식도 이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도록 큰 몫을 한다. 역자의 능력일지도 모르겠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번역을 해 낸 이창신이라는 분의 능력도 대단하다. 옳은 일 하는 것이 무엇인지 물어보는 데서 시작하는 이 책은 공리주의, 자유지상주의, 이마뉴엘 칸트, 존 롤스, 아리스토 텔레스로 이어지는 철학의 근간을 '정의'라는 주제로 매우 쉽게 풀어내고 있다.

 

맨 끝장에서 그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과 사건에 계산적인 판단으로 결론을 지어버리는 공리주의를 절대 거부한다. 그렇다고 시장만능주의자들에 동조하지도 않는다. 도덕적, 주관적 판단을 배제하는 평등주의자 존 롤스의 철학을 존중하고 그의 정신을 이어받지만 그의 철학마저 비판하며 그는 목적론자였던 아이스토텔레스에 주목한다. 사람들이 추구하는 목적의 도덕적 가치, 우리 삶의 의미와 중요성,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삶의 특성과 질을 정의의 영역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그는 정의로는 사회는 단순히 공리를 극대화하거나 선택의 자유를 확보하는 것만으로는 만들 수 없다고 주장한다. 좋은 삶의 의미를 함께 고민하고, 으레 생기게 마련인 이견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열린 문화와 공동체적인 시민의 성숙한 삶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물질적 가치만을 최고로 여겼던 지금도 이 흐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미국에 경종을 울리는 그의 유쾌하고 명쾌한 삶의 철학이 세상을 얼마나 바꿀 수 있지 한편으로는 적지 않은 의문도 들었다.

 

요즘 뜬금없이 '공정한 사회'라는 말이 최고권력자와 그의 무리들 속에서 떠돌고 있다. 그동안 그리 공정하게 살아오지 않았던 이들이 새삼 '공정한 사회'를 말하는 것이 나는 영 마땅치 않다. 말을 앞세우는 이들의 모습이라는 게 속빈 강정이라는 생각은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공정하지 못한 사회에서 정직하게 살아가는 게 손해라는 게 대다수 국민의 생각을 '공정한 사회'라는 화두를 꺼내면 단번에 뒤바꿀 수 있다는 것인지, 그들의 진정성을 믿어달라는 것인지, 단 한 번도 공정하지 못했던 정치인들의 씁쓸한 행각을 보면서 나는 다시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이 책 표지를 바라본다. 책 표지에는 하버드 대학의 어느 큰 강의실에서 저자가 강의를 하는 모습이 담겼다. 문득 대학시절 단 한 번도 지적유희를 체험하지 못한 씁쓸한 지난 날이 떠올랐다. 그만큼 달라지지 않은 정의롭지 못한 우리 사회를 떠올렸다. 자기와 다른 생각은 무참히 짓밟고 내 쫓는 천박한 삶의 철학을 가진 위정자와 권력자들의 힘에 끌려 살아가는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떠올랐다. 현실은 늘 이렇게 우울할 수밖에 없는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