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그 아련한 추억들/읽은 책 들려주기

그림책의 힘_가와이 하야오, 마츠이 다다시, 야나기다 구니오

갈돕선생 2013. 5. 23. 13:32

 

 

그림책 관련 전문가의 강의도 곧잘 들었고 내 주변에는 언제든 연락할 수 있는 친분있는 그림책 전문 실천가들이 있음에도 내게 그림책은 아이들에게 그림과 함께 이야기를 들려주는 도구 이상, 이하도 아닌 그 무엇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 혹은 2주일에 한 번씩 반 아이들에게 들려주던 그림책, 빛그림책을 만들어 공연도 하고 학급문고에 잔뜩 쌓아둔 책을 읽어보게도 했지만, 나는 학급운영 속 한 꼭지로만 그림책을 다루었다. 그러던 내가 그림책에 다시 관심을 가진 건 연구년 지도교수로 관계를 맺은 청주교대 엄훈교수의 <학교 속의 문맹자들>때문이었다. 엄훈교수의 실천 속에는 읽기부진을 겪고 있는 중학생들을 만나는 도구로 그림책이 소개돼 있다. 중등교사에서 대학교수로 직업을 바꾸면서 초등학생과 만나는 도구도 그림책이 주류를 이룬다. 읽기 회복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선진국의 많은 학교에서도 그림책은 읽기 부진 학생들을 도와주는 일차적인 도구로 자리매김 한 듯 보였다. 당연히 이와 관련한 보고서를 써야 하는 나는 그림책에 관한 공부를 다시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림책 관련 실천가 최은희선생님이 소개한 여러 책 중에서 우선 <그림책의 힘>을 골랐다. 이 책에서 먼저 손이 간 까닭은 <어린이와 그림책>으로 이미 만난 적이 있는 마츠이 다다시 때문이었다. 그림책이 어떤 것인지 교사인 나를 처음으로 그림책으로 안내한 책. 그 분의 강연내용이 담긴 책이어서 마음이 무척 끌렸다. 오래 전에 읽었던 책이어서 어렴풋 하지만 그림책이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그림책의 가치는 어떤 것에 있는 지를 아주 쉽게 설명한 책으로 기억한다. 그분과 더불어 일본 융 학파의 선구자라고 칭해지는 임상심리학자 가와이 하야오와 일본의 논픽션 작가로 잘 알려진 야나기다 구니오의 강연, 그리고 이들이 펼치는 그림책 대담은 딱딱하고 지루할 것 같은 그림책론에 쉽게 다가서게 만든다. 그림책과 인연을 맺으면서 체험한 깨달음과 그로인해 발견한 그림책의 힘과 가치에 대해 매우 설득력 있게 독자와 청자들의 눈을 오랫동안 잡아둔다. 나는 사실 이 책을 3시간만에 읽어내면서 한 번도 손에서 떼지를 못했다.

 

이 책은 임상심리학자 가와이 하야오의 강연록으로 출발한다. 그림책이 지닌 가능성에 대한 다양한 각도를 살펴보고자 하는 그는 무엇보다 그림책 속에 '소리'에 주목한다. 그림책이 그림이 중심이니 소리와 관계없다는 생각은 너무 얕은 생각이라며 그램책 속에서 소리를 읽어낼 수 있을 때라야 비로소 그림책은 재미있고 그림책에서 꺼낼 수 있는 가능성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고 주장한다. 그림책 관련 강연이니만큼 강연록에는 그림책을 실제로 꺼내들어 소개하는 글이 많다. 다만, 책 속에서는 그림책의 일부만이 소개돼 강연록의 내용을 충분히 받아들일 수가 없어 아쉬웠다. 가와이 하야오가 들려주는 책 속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그림책 <엉터리 플루트> 이야기는 한국에 번역이 되지 않아 아쉽기만 했다. 그가 평하는 이 책의 테마는 다음과 같다.

 

"아무리 많은 것을 갖고 있어도, 아무리 행복해 보여도, 정말 딱 이거다 싶은 것은 역시 자기 힘으로 찾는 수밖에 없다는 것, 그것이 소리로 표현되어 있어요."(p.43)

 

<바이올린>도 마찬가지로 한국에서 출간이 되지 않았는데,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흠뻑 빠져 들어 정말 이 책이 한국에도 소개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고, 외서라도 사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는 이 책 속에서 들리는 바이론린 소리에 주목한다. 사람은 떠나도 소리는 남아 있고 음악도 남아 있다는 진리. 여기서 그는 영혼을 떠올린다. 영혼은 육체가 살라져도 남아있는 것이라며 그림책이 이런 삶의 진리를 전해주고 있다며 감탄해 한다. 소리와 노래는 마음으로 듣는 영혼의 울림이라며. 가와이 하야오의 강연록에서 느낌이 오는 말이 하나 또 있다. 아이들은 예쁜 것 좋은 것만 듣고 보며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부모들과 교사들이 새겨들을 말이다.

 

"대체로 재미있는 것은 무섭습니다. 가치 있는 일은 위험하지요. 모두 위험이 따릅니다."(p.39)

 

마츠이 다다시는 그림책 출판 전문가로 더 알려져 있다. 일본의 그림책이 세계적인 각광을 받을 수 있는 데는 마츠의 다다시의 공이 크다. 그림책이 전무하던 1950년대 일본에 그림책의 가치를 일찍 깨닫고 출판을 통해 보급을 해나가던 대단한 선구자였기 때문이다. 그의 그림책에 관한 지론은 그림책은 '어른이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책'이라는 곳으로 쏠린다.

 

"저는 눈으로 읽는 것보다 귀로 듣는 것이 말의 본질에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p.55)

"진정한 그림책은 다른 곳에서 만들어집니다. 어린이가 독자일 경우에는 어린이가 직접 그림책을 만듭니다. 즉 귀로 말을 듣고 눈으로 그림책의 그림을 봅니다. 사실, 어린이는 삽화를 보는 것이 아니라 삽화를 읽습니다. 그림책은 온전히 말의 세계입니다. 말이 되지 못하는 그림은 없습니다......어린이는 그림을 읽는다. 그림 속에 있는 말을 읽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청각을 통한 말의 세계를 체험한다. 귀로 들은 말의 세계와 눈으로 본 말의 세계가 어린이 속에서 하나가 된다. 그때 그림책이 완성되는 것입니다."(p.57-58)

 

흔히 그림책을 아이들이 읽는 쉬운 책이라고 여기는 어른들이 많다. 나 또한 그러하였다. 하지만 10년 전부터 그림책이 부각되기 시작하고 여기 저기서 그림책을 교실 속으로 끌어들인 몇 몇 선생님들의 실천을 보면 정말 그림책은 어른이 아이들에게 읽어주는 책이 맞는 것 같다. 최은희선생님은 날마다 아이들을 자기 쪽으로 둥굴게 모아 놓고 아이들 눈 높이에 그림책을 열어 읽어준다. 아이들의 눈은 그림으로 쏠리고 어른도 발견하지 못하고 그냥 지나치는 부분에서 말을 하기 시작한다. 그 과정은 그림책을 읽는다기 보다 어느새 삶을 나누는 과정으로 보인다. 읽기 목표를 두고 느낌을 발표하는 기존의 수업방식을 그리면 오산이다. 구태여 수업이라고 표현하기도 싫지만 실제로 수업시간에 행해지는 일이니 그것을 수업이라고 한다면 나 또한 그림책으로 아이들과 삶을 나눈다. 목표에 도달하고 평가가 어떻게 이루어졌냐는 공교육적 사고와 눈으로는 이러한 수업방식을 이해하지도 납득하지도 못할 것이지만, 학교가 아이들과 삶을 나누는 공간이어야 한다는 명제를 생각해 보면 어쩌면 이러한 교사와 아이들의 만남은 매우 중요하고 소중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에서 마츠이 다다시는 종이 질을 달리하여 완다 가그의 <백만 마리 고양이> 그림책을 소개하며 그림책 속의 그림과 글이 어떤 조화를 이루어야 아이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지를 세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그는 그림책의 그림은 색채가 아니라 선과 형태와 구도로 이야기를 해야한다고 말한다. 장면의 연속성과 변화과 그림책의 기본적이라며 <백만 마리 고양이>에서 이를 깨달았다고 전한다. 그의 강연과 관련해 다른 곳에서 현대 그림책이 지나치게 색에 집중하는 것 같아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하였는데, 이 지점에서 그의 생각을 엿볼 수 있어 흥미롭기도 했다. 뜻밖에도 그의 강연록 끝에는 일본에서 한 강연임에도 한국의 그림책의 성장과 발전에 크게 놀라워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는 한국의 그림책을 보며 어린이에게 반드시 이야기해 주어야 할 것이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오히려 그림책 강국 일본이 배워야 할 것 같다는 소견도 펼쳤다. 과연 일본의 그림책 전문가 다운 모습이었다.

 

다음으로는 그림책의 전문가가 아니었지만 25살 된 아들을 읽고나서 우연히 만나게 된 그림책에서 삶의 의미를 찾게 된 방송작가 야나기다 구니오의 강연이 이어진다. 그는 그림책이 아이들 뿐만이 아니라 어른이 자기 자신을 위해 읽는 책으로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를 이야기 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어른이 그림책의 세계에 얼마만큼 들어갈 수 있는가, 그림책을 어디까지 읽어낼 수 있는가, 그림책에 자신이 정말 흥미를 느끼거나 감동할 수 있는가 하는, 갖가지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느낄 수 있는 지에 대해 얘기하고 싶어요. 이런 것들을 생각해 보지 않고서는 어린이에게 그림책을 아무리 많이 읽어준다 해도 사실은 그 세계를 전달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러면서 야나기다 구니오는 자신이 경험한 이야기들을 통해 그림책이 어른들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매우 설득력있게 설파한다. 한 예로 막내동생의 죽음을 지켜봐야 하는 남은 두 형제에게 이 현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 모르던 차에 상담을 받은 같은 병동 의사가 병원 안에 있던 <오소리 아저씨의 소중한 선물>을 꺼내 아이들에게 읽어주면서 자연스럽게 막내동생의 죽음을 받아들이게 했던 사실에서 그는 그림책의 가치와 중요성을 절실히 깨닫는다. 그는 생명이나 영혼, 삶과 죽음 같은 중대한 문제를 단순히 피상적인 말이 아니라 영혼을 울리는 형태로 전달할 수 있는 그림책의 힘에 대단함을 느끼며 이보다 훌륭한 의사소통 수단은 없다고 믿는다. 이 밖에도 두어가지 예를 들며 IT시대에 진정 영혼을 울리는 시간과 공간을 얻을 수 있는 매체로 그림책을 서슴없이 꺼내든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인간은 절박한 상황에 내몰리거나 소중한 사람을 잃는 경험을 하지 않고서는 진정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한다고 합니다. 내가 그림책에 빠져든 것도 그때의 심경과 무관하지 않았겠지요. 하지만 그것은 고마운 일이었습니다."(P.17)

 

그림책은 어린이들만을 위한 책이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깊은 영향을 주는 새로운 매체라며 그림책이 현대 인간의 삶과 어떤 식으로, 얼마나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가를 생각하는 전문가 3인의 이야기는 대담으로 이어져 2부에 수록돼 있다. 각자의 강연에서 언급한 내용과 일본 그림책에 관한 평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몇 가지 주제로 이어지는 대담록에서 우리가 새겨 들어야 할 그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글을 일부 옮겨와 본다.

 

마쓰이 다다시

"문제는 요즘 어린이들은 말의 체험이 너무나 빈약하다는 점이에요. 사람의 말을 귀로 받아들이는 일, 목소리를 통해 받아들이는 일이 별로 없죠. 저는 기계를 통해 들리는 사람의 목소리는 단지 소리일 뿐이라고 생각해요. 요즘은 인간이 서로를 마주보고 소리내어 이야기하는 체험이 너무나 부족해요. 그렇기 때문에 현대 어른들은 더더욱 어린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줘야 하는 거예요.

 저는 아이들이 글을 일찍 깨우치는 것에 찬성하지 않아요. 글이라는 것은 매우 한정된 것이고, 책을 읽는다는 것은 그 한정된 말 속에 혼자 들어갈 수 있다는 뜻이죠. 반면에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은, 글을 읽어주는 사람과 공간을 함께 나누는 체험을 뜻해요. 그런 의미에서도 나는 그림책 읽기를 권장하고 싶어요. 타인과 한 공간을 공유하는 인간적 체험을 풍부히 쌓고, 목소리를 듣고 말의 세계로 자유롭게 들어갈 수 있는 힘을 기른 어린이가 글을 읽는 기술을 터득한다면, 독서가 가능하겠지요. 하지만 요즘 아이들은 글 읽는 기술만 배울 뿐이에요. 그런 상태로는 진정한 독서를 할 수 없어요.

 2000년 10월 현재 통계에 따르면, 한 달에 책 한 권도 읽지 않는 고등학생이 60%, 중학생은 57% 정도라고 해요. 즉 글은 읽을 줄 알지만 말의 세계에 들어가지는 못한다는 거예요. 이런 아이들은 마음이 전해지는 말을 귀뢰 듣는 과정부터 다시 밟아 나가야 하는 셈이에요. 어린 시절에, 말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준다는 것을 체험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에요."

 

가와이

그렇기 때문에 글을 읽는 것과 글을 통해 책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전혀 다르죠. 필요한 것을 글로 읽는 것은 그야말로 매뉴얼을 읽는 것과 다를 바가 없어요.

 

마츠이

저는 학교선생님들이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었으면 해요. 가르치는 교사와 이야기하는 교사는 의미가 다르거든요.

 

마츠이

옛이야기에는 온갖 악이 표현되어 있으니까 아이들에게 꼭 들려주었으면 좋겠어요. 요즘 아이들은 악이나 잔인함을 모르는 것 같아요. 옛이야기에는 그런 내용이 많으니까, 어린 시절에 이야기로서 풍부하게 체험하는 편이 좋아요. 그런데 어른들은 모두 피해 버리죠. 이건 잔인하다. 이건 나쁜 내용이다 하면서......

 

가와이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피해할 수는 있을지는 몰라도, 현실에서는 악이랄까 나쁜 생각이 문득문득 떠오르니까 쉽게 제어할 수가 없어요. 그런 일은 자기도 모르는 일이 갑자기 일어나는 거니까.

 

야나기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부모와 아이 사이의 돈독한 신뢰관계가 성립되어 있는 상태에서 악이나 공포를 다룬 이야기를 듣거나 공포 체험을 해야 한다는 거예요. 부모와 신뢰관계가 확고히 쌓여 있을 때는 아무리 무서워도 부모 품에 꼭 안겨 있으면 안심이 되니까. 신뢰관계를 바탕으로 공포체험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에는 저도 찬성이에요.

 

마츠이

저는 늘 아이들에게 무서운 이야기만 들려주죠.

 

야나기다

아이들은 좋아하겠죠?

 

가와이

물론이에요. 같은 이야기를 몇 번씩 해달라고 조른답니다.

 

마츠이

말의 힘이란 얼마나 대단한지 모르겠어요. 이야기꾼은 이야기의 세계가 자기 속에 뚜렷이 그림으로 그려졌을 때에만 상대방에게 그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구나 하는 걸 느꼈어요. 요즘 아이들은 그런 체험이 너무 적어요. 모두가 눈에 보이는 세계만 쫓고 있어요.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그림책이 주는 힘과 가능성에 대해 새삼 깨달은 점이 많았다. 그러면서 읽기 회복 프로그램에서 그림책이 차지 하는 가치와 비중, 그림책을 다루는 방법 등에 문득 의문이 들었다. 언뜻 파악한 읽기 회복 프로그램에서 그림책은 아이들이 읽어야 할 도구였지 교사들이 들려주는 도구로 활용되는 면이 잘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짧은 텍스트로 그림과 어우러져 읽기 부진을 겪고 있는 아이들에게 적합한 책인것만은 분명하겠지만, 그것을 다루는 방법에 대해 좀 더 깊은 이해와 접근이 필요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더 공부하고 살펴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