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꺼이 다른 사람의 신발을 신고 걸어보라!
부당한 편견과 차별은 오롯이 피해자의 몫으로 남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것이 오랫동안 지속되고 사람들 사이에 내면화가 될 때는 무엇이 문제인지, 누구의 문제인지 밝혀내기조차 힘들다. 미국사회가 바로 그러했다. 형식적인 노예해방과 민주주의가 미국사회를 지배하면서 일반 백인들은 그들이 공공연하게 혹은 은연중 흑인들을 차별하고 있음을 깨닫지 못했다. 《젊은 교사들을 위한 편지》의 조너선 코졸은 심지어 흑인들조차 백인들에 의해 그들이 차별을 받고 있음을 깨닫지 못한다는 사실에 놀라워했다. 차별의 역사에 대해 누구도 가르치고 배우려 하지 않는 사회의 이면에는 시민사회의 자발적 동의에 의한 침묵의 문화가 있었다.
《푸른 눈 갈색 눈》은 이러한 미국사회의 침묵을 깨뜨리고 저항한 백인 여교사 ‘제인 엘리어트’의 특별한 수업이야기이다. 그는 매우 자극적이고 조금은 위험해 보이는 방법으로 편견과 차별로 철옹성을 구축한 미국사회에 작지만 의미 있는 균열을 냈다. 이 이야기는 마틴 루터 킹 목사의 피살사건 이후인 196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의 ‘분열된 교실’(A Class Divided)은 백인만 사는 작은 도시의 초등학교 3학년 교실에서 시작한 매우 불온한 실험이었다. 한 반의 백인아이들을 푸른 눈과 갈색 눈이라는 두 가지 색으로 나누어 하루씩 번갈아 가며 서로를 철저하게 차별하는 수업은 교사와 아이들 모두에게 큰 고통을 안겨다 주었다.
엘리어트와 아이들이 불과 이틀 사이의 경험에서 깨달은 것은 차별은 결코 머릿속으로 그려질 수 없다는 것, 실제로 당해 본 사람만이 차별의 고통과 절망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깨달음은 이 아이들이 멋 훗날 성인이 돼 돌아와 지난날을 회고할 때도 그대로 드러났다. 그들이 기억하는 특별한 수업은 성인이 된 그들에게 ‘다름’을 더 이상 ‘차별’로 이름 붙이지 않게 만드는 큰 힘이 돼 주었다. 이렇듯 불온하기 짝이 없는 교사 엘리어트의 ‘차별수업’은 이후 <폭풍의 눈>이라는 다큐로 만들어져 미국 전역에 소개된다. 그러나 큰 반향만큼이나 엘리어트의 삶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 백인 사회의 따가운 시선과 엘리어트의 자녀들에게까지 가해지는 테러 위협은 더욱 심해져만 갔다.
그럴수록 엘리어트는 아이들은 물론 성인들에게,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 ‘차별수업’을 통해 인종차별이 얼마나 비인간적인 행위인가를 끊임없이 설파했다. 그러나 엘리어트 본인도 안타까워하듯, 미국사회는 오늘날까지도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뿌리 깊은 미국사회의 인종차별문화는 중립을 가장한 자본과 교육에 의해 더욱 확대재생산 되고 있다. 이는 사회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차별의 층위가 매우 다양했기 때문이었다. 지적 인종주의로 일컬어지는 학력차별, 자본에 의한 노동차별, 사상차별, 민족차별, 외모와 여성차별에 이르기까지 차별을 정당화하는 사회를 전반적으로 변화시키지 않고서는 인종차별에 관한 개인의 의식변화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했다.
차별만이 가득해 보이는 미국 속에도 놀라운 세계는 있다. 미국 보스턴 남부 뉴잉글랜드에 위치한 섬 ‘마서즈 비니어드’가 바로 그곳이다. 이곳은 유전적 청각장애인들이 건청인들과 아름다운 공동체를 꾸리며 살고 있다. 어디에도 편견과 차별이 없다. 이 사회를 연구한 문화인류학자 노라 엘렌 그로스는 국내에도 소개된《마서즈 비니어드섬 사람들은 수화로 말한다》를 통해 ‘장애란 사회문화적으로 만들어지는 하나의 사회적인 가공 구조’라 결론을 내린다. 차별은 지극히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것이다. 그 층위도 다양하다. 차별사회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다방면의 사회적 연대가 절실하다. 그러나 거꾸로 우리가 꿈꾸는 사회를 위한 도전은 각자의 위치에 있는 현실에서 출발해야 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많은 논란과 한계를 보여주었지만, 제인 엘리어트는 ‘차별수업’을 통해 한 개인의 실천이 차별이 만연한 사회에 적지 않은 균열을 낼 수 있다는 놀라운 가능성과 희망을 보여주었다. 이는 누구도 감히 시도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는 자기가 머문 곳에서 자신이 살고 싶은 세상을 그리며 자신의 삶을 가꾸고 만들어 갔을 때,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새로운 사회운동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그곳에는 분노와 저항이 있었고 차별의 역사와 사회로부터 스스로를 구해내기 위한 불복종이 있었다. 이것이 내가 《푸른 눈 갈색 눈》에 주목할 수밖에 없는 가장 크고 중요한 이유다.
박진환(충남 반곡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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