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부터 준비한 가정방문을 오늘 처음으로 시작했다. 돌이켜 보니, 내 반 아이의 집을 찾은 건 교사가 된지 14년 만에 세 번째이지 않나 싶다. 그것도 우연히 찾게 된 방문이어서 이렇게 계획 세워 움직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오늘 가정을 방문하기로 한 집은 창우네다. 4학년 보통 키에 몸이 마른 편인 창우. 조용한 편이지만 자기 일은 잘 해내는 편이어서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던 평범한 아이였다. 어머님도 전화나 학교를 찾으신 적이 없어서 가정방문은 기대하지 않았다. 학기 초 설문에도 상황봐서 하겠다는 표시가 돼 있었는데 가정방문 요청을 한 것이다.
학기초 설문엔 열 분이 넘게 가정방문 의사표시를 해 주셨는데 막상 가겠다고 하니 수가 반으로 줄었다. 조금 아쉽기도 했지만 그만한 사정들이 있으리라 여겼다. 그 다섯 가정 중 창우가 나는 제일 눈에 들었다. 다른 가정들은 한 번씩은 나와 만남이 있었지만, 단 한 번도 만남이 없던 가정이 신청한 것이기에 제일 먼저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마침내 오늘 창우네를 찾아 나섰다. 어머니가 일을 마치고 5시 30분에야 집에 오신다고 하고 창우는 태권도를 마치고 5시에 나를 만나러 올 수 있다기에 학교에서 창우를 기다렸다. 창우는 5시 5분이 조금 넘어서 학교로 왔다. 동생 민건이랑 태권도 복을 입은채 헥헥거리며 나를 만나러 왔다. 둘이 똑 닮았다. 내 차에 태우고 집으로 향했다. 차안에서 말은 건냈다.
"창우님, 선생님이 창우님 집에 간다니까 어때요?"
아마도 내 생각엔 '모르겠어요.' 할 것 같았다. 내성적인 아이일 수록 표현이 늘 그랬다. 역시나
"잘 모르겠어요."
그래서 되물었다.
"떨리지 않아요?"
그제서야,
"네, 조금 떨려요."
그랬더니 옆 자리에 앉아있던 동생 민건이가 한마디 거든다.
"우리 형, 떠는 거 처음 봐요."
그래서 나도 한마디 건넸다.
"사실, 선생님도 떨려요. 오랜만에 가는 가정방문이라서."
창우네 집은 학구라서 그리 멀지 않았다. 5분도 안되어 차를 세우고 집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창우는 우리 어머니가 일찍 오신 거 같다며 앞서 집으로 갔다. 나도 뒤따라 갔다. 창우가 누른 힘찬 벨 소리에 창우어머니가 나를 맞아 주셨다.
창우만큼이나 체구가 마른 어머니셨다. 조금은 수줍으신 듯 인사를 하시고는 서둘러 부엌으로 달려 가셨다.
"어머니, 저 오늘 학교에서 떡도 많이 먹고 와서 그냥 차 한 잔이면 됩니다."
"그렇습니까. 그러면 드시고 오셨다니 차만 준비할게예."
매실차를 앞에 내 놓으신 어머니는 연신 수줍어 하신다. 조금 긴장했던 나도 마음을 풀고 이런 저런 사는 얘기부터 먼저 꺼냈다. 직장때문에 제주도에 계셔 두 세달에 한 번씩 집에 오신다는 아버님 얘기부터 어머님 일하시는 얘기를 했다. 그러다가 학교 얘기가 자연스럽게 흘러 나왔다.
"사실, 제가 학교 찾아가는 걸 많이 좋아하지 않거든예. 창우 1학년때 다른 학교에 있었는데, 급하게 상을 당했었거든요. 그런데 학기초인데다 담임선생님 연락처가 없어서 교무실로 했었습니더. 그런데 교무실에서 전화받으시는 선생님이 담임전화번호도 몰라 전화를 했냐며 직접 하라며 무안하게 하더하데예......... 그 이후로 학교 선생님들에게 전화하는게 오히려 선생님들 귀찮게 해 드리는 거 같아 안 합니다. 학교도 안가고예. 유치원때는 워낙 친절하고 잘 챙겨줬는데 초등학교에 들어오니까 영 달라서......"
창우어머니가 학교를 왜 찾지 않았는지를 그제서야 알게 됐다. 불친절한 학교, 불친절한 교사에 대한 불신이 가득했다. 그런데 나는 달랐단다. 개나리 통신을 보내고 이런 저런 활동들을 보면서 자기 주변 사람들에게 자랑도 하신단다. 이번에 선생님은 참 친절하다고. 그래서 말씀드렸다.
"올해는 자주 학교도 찾아 주이소. 특히 학기말 잔치때는 꼭 오시구예. 저에게는 편하게 연락하셔도 됩니다."
그러니 하시는 말씀,
"아이고, 그냥 선생님한테 맡기면 되지예. 제가 무슨 말씀 드릴 것도 없고...."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서 창우가 학교에서 공부하는 얘기도 건네드리고 집에서 지내는 창우의 이야기도 들었다. 창우를 사이에 두고 교사와 어머니가 함께 생각하고 걱정하는 그 짧은 시간이 내겐 참으로 뜻 깊은 시간이었다. 아울러 경제사정이 넉넉치 못하여 다양한 경험을 시키지 못해줘서 아쉽지만 나름대로 아이들이 요구하는 걸 해 주고 싶고 해 주고 있다는 말씀을 들을 땐, 이 땅에 사는 아름다운 우리 어머니들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따뜻했다.
그래서 그런지 창우도 학교생활이 안정되어 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기 일을 착실히 해낸다는 어머님 말씀처럼 학교에서도 창우는 자기 일에 열심이다. 4학년 또래의 아이다움도 가득 찬 창우가 부모님과 함께 오랫동안 행복했으면 하는 바라을 가져 보았다. 평상시 늘 조용하고 말이 없지만 공부할 때 발표도 곧잘 하고 열심이었던 평범한 창우를 일주일동안 내내 지켜볼 수 있었던 건 바로 가정방문이라는 형식이 있었기 때문이지 않나 싶다.
오늘 첫 가정방문지를 창우네로 한 것은 참 잘한 일이라 생각했다. 방문한지 50분이 다 되어서 일어서 나오려니 그냥 가시면 안된다고 시골에서 받아 오신 검은 콩과 들기름을 서둘러 챙겨주신다. 이보다 좋은 선물이 어디있겠는가. 따뜻한 마음을 받는 거라 생각하고 고맙게 받았다. 문 밖까지 나오셔서 찾아주신 걸 고맙게 생각한다는 창우어머니 말씀을 뒤로 하고 나는 집을 나왔다.
지난 날 내가 좋아했던 선생님은 딱 두 분이셨다. 6학년때 강충원 선생님, 중학교 2학년때 담임이셨던 국사선생님. 그런데 묘하게도 이 두분만 우리 집을 찾아주셨던 선생님이시다. 난 그 추억을 잊지 않고 있다. 아마도 창우에게도 오늘 이 가정방문이 오랫동안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그 행복한 추억, 행복한 기억이 살아가는데 작은 힘이 되어주었으면 한다.
오늘도 난 행복했다.
창우어머니가 주신 들기름과 검은콩. 너무 고마운 선물이라 사진으로 남겨 본다.
'2006-12교사일기 > 2006년 교단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이들 발 씻어주기 (0) | 2006.05.06 |
---|---|
4월을 마무리 지은 비빔밥 잔치 (0) | 2006.05.01 |
아이들은 역시 아이들이다. (0) | 2006.04.27 |
내일은 중간고사 하지만..... (0) | 2006.04.26 |
4월 학부모 모임 (0) | 2006.04.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