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박기범 선생의 단편동화 '문제아'를 들려주고 각자 자기 의견을 내세우는 수업을 했다.
이 수업에 앞서 '문제아'라는 시에 곡을 붙여 잘 알려진 노래 백창우씨의 '문제아'를 함께 불러 보며 수업의 문을 열었다.
일단, '문제아'라는 단편동화에 아이들은 20분 동안 숨죽이며 때로는 웃고 때로는 안타까워하면서 내 목소리에 귀 귀울이며 즐겁게 들어 주었다. 이어서 '문제아'의 인물 '창수'가 어떤 사건과 과정을 거쳐 문제아가 되어 갔는지 함께 살펴보고 확인하는 과정을 밟았다.
이제 본격적으로 토론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창수는 문제아가 되어야만 했을까?'라는 주제로 토론을 하기 시작했다. 일단 문제아가 될 수 밖에 없음에 찬성하는 아이들과 문제아가 되려 해서는 안 된다며 반대를 하는 아이들의 수를 알아보고자 손을 들게 했다.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뜻밖에도 우리 반 아이들은 35명 가운데 무려 서른 명이 창수가 문제아로 살기로 결정한 과정과 선택 모두 잘못된 것이라 하지 않는가. 도무지 창수를 이해하려 들지 않았다. 다른 글에서 볼 수 없는 아이들의 반응이었다.
그래서 이제는 찬성과 반대 아이들 한 명 씩 의견을 들어보며 분위기를 조금 바꿔 보려 했다. 하지만 찬성하는 아이의 의견은 설득력이 부족해 보였고 반대하는 아이들은 너무 도덕적이었다.
찬성하던 한 아이는
"저는 창수의 마음을 이해합니다. 솔직히 자기가 저지른 일도 아닌 일에 끌려들어가 어쩔 수 없이 겪은 일인데 그 일로 친구들과 선생님이 창수를 못된 아이로 보는 것은 지나친 일입니다. 저는 창수가 그럴 수 밖에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반대하는 한 아이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창수는 아무리 친구들이 자기와 놀아주지 않으려 해고 선생님이 오해를 하고 계셔도 계속 착한 일도 하고 친구도 도와주었으면 달라졌을 겁니다. 노력도 많이 하지 않고 문제아로 살겠다고 결정한 일은 잘못한 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찬성하는 아이들이나 반성하는 아이들이나 여기서 한 발짝도 더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무언가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내 참지 못한 나는 주인공 찬수의 가정환경과 문제아가 되어 가던 과정, 우리 주변의 문제아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꺼내며 좀 더 깊이 찬수를 이해하며 토론을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시간도 모자라 급하게 마무리 지을 수 밖에 없었는데, 아이들은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려 하지 않은 것 같았다. 그게 그렇게 중요한 일이냐는 듯.
'내가 너무 소홀하게 수업을 준비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먼저 반성을 해야 했다. 좀 더 충분한 발문과 수업 전개 상황을 생각했어야 했는데, 답답한 마음에 서둘러 내 의견을 아이들 앞에 얘기했었고 그 이후 토론을 이어가는 흐름을 끊어 버린 것은 정말 잘못한 일이었다.
다른 쪽으로 생각해 보면 생각보다 우리 아이들이 '모범생 콤플렉스'에 빠져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책을 읽을 때 반드시 착한 행동을 보이는 인물에 대해 맹목적으로 긍정적인 태도를 갖는 이분법적인 사고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오늘 국어모임도 했지만, 우리 선생님들은 교과서 속 텍스트에서 이어지는 여러 질문들이 의외로 이렇게 단순한 이분법적인 사고로 이끌어내고 있다는데 동의를 했다. 착한 아이, 착한 동물, 역경을 이겨내는 인물, 언제나 선이 악에 앞서고 옹졸함 보다는 덕이 앞선다는 두 개의 생각과 눈만 말하는 교과서에서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맥락은 잃어버리고 오로지 어른들이 옳다는 하나의 답을 내 놓는데 익숙해져 온 것은 아닐까.
오늘 국어 수업을 하면서 오랜만에 뜻 있는 고민을 해 보았다. 담임인 나조차 보이지 않게 아이들에게 맥락과 과정으로 서로 소통하고 관계 맺기를 거부하고 하나의 답과 일정한 행동만을 강요하지는 않았는지 반성을 해 보았다. 박기범 선생의 '문제아'를 세상에 내 놓은 뜻이 '모범생 콤플렉스'에 길들여져 온 아이와 그렇게 가르쳐 온 어른들 덕에, 또 수업 준비를 철저히 하지 못한 교사 덕에 빛을 보지 못한 것 같아 미안할 따름이다. 오늘 아이들에게 큰 것, 좋은 것 하나 배웠다. 이 놈들아, 오늘 고맙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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