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두어 달 전인가 서울 혜화역 4호선을 타려고 기다리는데, 오이도행이라는 글씨를 본 연아선생님이
"'오이도행 열차'라는 동화책도 있는데."
했다. 그러냐고 하면서 언젠가 그 책을 한 번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이야기인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책인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읽고 싶었다.
책은 쉽게 읽혔다. 큰 글씨로 130쪽 남짓되는 양은 빠른 흐름으로 풀어내는 이야기 덕에 더욱 짧게만 느껴졌다. 도시 빈민으로 살아가는 반지하 단칸 방에 사는 '다애'라는 5학년 한 여자 아이의 이야기. 열 두살 아이가 짊어지기에는 너무도 무거운 짐을 가녀린 어깨에 지고 살 수밖에 없는 아이 다애. 대게 이런 아이들 모습이 그렇듯, 일찍 세상을 알아버린 탓인지 다애는 어른 못지 않은 깊은 심성으로 억척같이 하루하루를 살아나간다.
잘 사는 아이들과 어울릴 수 있는 방법은 공부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나 유치원 다니는 동생을 날마다 엄마 대신 챙기며 보살피는 모습은 내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이는 아니었다.
문득 6년 전 내가 맡았던 슬이라는 6학년 아이가 떠 오른다. 맞벌이 부부의 장녀로 오빠와 동생을 챙기며 하루하루를 보내야 했던 슬이. 학원비가 없어 방학에도 친구를 만나지 못하고 지겹게 하루를 보내던 아이. 담배심부름을 가면서 무심한 얼굴로 담배만을 피워대던 아버지가 담배를 끊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눈물을 훔치던 아이. 예쁘고 맑은 눈을 가졌던 슬이를 그때 나는 그렇게 떠나 보내고 말았다. 남은 건 슬이의 글뿐.
오이도행 지하철에서 집을 나간 아버지가 부채를 팔던 모습에서 충격을 받았던 다애. 어린이날 엄마 없이 동생을 데리고 다시 오이도행 열차를 타고는 어린이대공원을 찾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을 그저 슬픈 눈으로 지켜봐야만 했던 다애는 오이도를 섬이라며 동생에게 바다를 보러가는 게 어떠냐 제안을 한다. 그리고는 한편으로끊임없이 부채를 팔고 있을 집 나간 아버지를 찾는다.
이 책을 소개한 모선생님은 오이도행 열차에 오른 다애의 선택을 희망을 찾아 나서는 선택으로 말하지만, 과연 다애에게는 무슨 희망이 있을까 싶다. 개인적인 희망은 구조적인 절망에서 방황할 것이 뻔할 것인데, 점점 더 이 사회는 다애와 같은 아이들을 절망 속으로 떠밀기만 하는데, 무슨 희망을 이야기 할 수 있단 말인가? 이제 낡아버릴 대로 낡아버린 희망이라는 이야기는 크게 와 닿지도 않는다.
다애라는 아이의 삶과 눈으로 써낸 '오이도행 열차'는 우리가 애써 외면했던 사회의 한 단면을 그저 실감나게 보여줄 뿐이다. 과연 이 책을 읽는 아이는 누구고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어른들을 위한 동화로 여겨도 좋을 듯 한 책이었다. 가벼운 책이었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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