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에 이 책을 사 50여쪽을 읽다 다른 책으로 갈아탔던 기억이 난다. 어떤 책을 읽다가 잠시 미뤄둔다는 건 재미가 없거나 크게 와 닿지 않은 탓일 게다. 분명 읽고 싶어 샀던 책이었는데, 그때는 이 책 내용이 그다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던 차, 올해는 담임도 맡지 않게 돼 모처럼 책 읽을 시간이 많아질 것 같아 작정을 하고 아이들 책과 어른 책을 합쳐 100권을 읽겠노라 스스로에게 약속을 해 보았다. 그랬던 탓에 오래 전에 미뤄두었던 이 책을 나는 다시 읽고자 했다.
'왜 아이들은 실패하는가'
아이들이 실패를 한다를 한다는 이 글귀만 봐도 공교육에 관계된 이야기일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 아이들에게 실패란 자전거를 타다 옆으로 쓰러지는 정도를 말하지는 않는다. 그건 실패가 아니라 아직 덜 배운 탓이거나 익숙하지 않은 것일 뿐이다. 익숙해지고 조금씩 익혀나가면 아이들은 어느새 스스로 자전거와 한 몸이 된다. 내 아이 태석이도 그랬다. 운동신경이 조금 둔해 보였던 우리 아이도 어느 순간 균형을 잡고 자전거를 어설프게라도 타던 옛날이 있었다. 성공이었지만, 어떤 보상도 없었다. 아이는 그저 자기 만족으로 가득했고 더 타고 싶어했다. 다른 아이들보다 자전거를 잘 타지 못하는 것이 불만이었는데, 이제는 제법 자전거를 타고 짧은 여행을 할 수도 있게 됐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익히고 배우며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아이들이 그러나 학교에 들어오면 대부분 실패자가 된다. 그런데도 학교는 희망과 가능성이라는 이름으로 주어진 학습내용을 익힐 수 있을 거라는 신화 속으로 아이들을 밀어넣고는 우수아와 열등아로 나누고는 모든 탓을 아이들에게 돌린다. 이 책은 바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존홀트는 실패의 원인을 아이들 스스로가 만들어내는 전략에서 찾고 있다. 눈치코치로 모르면서도 아는 척하는 아이들. 교사들마저 아이들이 배우지 못하고 있음을 알면서도 각종 전략을 사용해 학교에서 생존하는 법을 터득하는 아이들을 그저 내버려두고 넘어가려 한다. 아이들은 아무 것도 모르면서 아는 척을 한다. 왜 그럴까? 존홀트는 근본적인 까닭을 실패에 대한 아이들의 깊고 깊은 두려움에서 찾고 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 학교라는 공간에서 실패자로 낙인 찍혀 살아가야 하는 공포감이 배움에서 아이들을 도망치게 했고 때로는 그들 스스로 전략을 세워 아는 척을 하게 했다는 것이다. 이는 곧 학교가 오늘도 실패할 수 밖에 없는 까닭을 아주 잘 드러내주고 있다. 아이들이 무엇을 배워야 할 것이 있고 학교만이 그것을 할 수 있다는 오랜 신념이 깨지지 않은 이상, 아이들은 결코 배우지 않을 것이라는 존홀트. 배워야 할 것이 무엇이고 무엇을 배우기 싫어하는지 선택은 오로지 아이들에게 달려 있다는 존 홀트. 공립학교 교사인 나는 많은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지금도 우리 나라 많은 학교, 많은 교실, 많은 교사들은 국가에 의해 주어진 내용이나 교사가 재구성한 내용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수도 없이 학교와 교사는 아이들에게 시험이라는 도구로 가르친 내용을 확인하려 들고 아이들은 끊임없이 성취와 좌절, 성공과 실패라는 경험을 하며 학교라는 공간에서 생존해 나가고 있다. 때로는 아니 많은 경우의 아이들이 학교를 벗어나고 싶어 하고 실제로 도망치려 한다. 일반적으로 학교와 교사들은 그들을 부적응아, 문제아, 열등아, 부진아로 취급하고 낙인을 하고는 배제하거나 새로운 공간으로 밀어넣어 갱생(?)을 시키려 한다. 감옥에서 또 다른 감옥으로 갈아타거나 도망자나 노숙자신세를 면치 못하는 아이들은 길을 찾지 못하고 어른이 보여주는 길이 곧 자신이 선택한 길인양 착각하며 살아간다. 배움이 없다. 정말 배움이 보이지 않는다.
요즘 부쩍 수업이야기가 넘쳐 난다. 교육청쪽에서는 기술적인 접근으로 화려한 교수기법을 논하며 일정한 틀과 유형으로 교사의 교수법을 한계 지어 수준별로 등급을 매기려 한다. 수업을 말하기는 하지만 교사의 기법이나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얻는 모범답안을 말하는 수준을 넘지 못한다. 학부모들이나 교사들 앞에서 쇼를 하는 전형을 재생산할 뿐이다. 이는 내가 첫발령을 받았던 1992년 상황과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더욱 강화될 뿐이었다. 나 또한 그 틀에서 수업대회에 나가 3등급을 두번 받았고 1등급까지도 받았다. 나름 배운 것도 있었지만 수업이란 쇼와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이 깊어질 뿐이었다. 학교 속 동료장학도 마찬가지였다. 교사들은 연구시범수업이 끝나 협의를 하면 모든 이야기가 교사의 교수행위에만 초점을 맞춰 이야기 한다. 물론 아이들의 효율적인 학습결과를 얻기 위한 것이라 포장을 한다. 그러나 결국 교사의 교수테크닉에 초점을 맞춘다. 아이들이 무엇을 배웠을까라는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는 일은 거의 없다. 이제 한편에서는 조금씩 수업이야기를 다르게 해 보자는 이야기가 나온다. 교사가 무엇을 가르치고 어떻게 가르치냐보다 아이들이 수업에서 실제로 무엇을 배우는지를 알아보자는 이야기를 하자고 한다. 아이들이 실제로 배우지도 않았는데, 교사의 화려한 교수방법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 한다. 존훌트의 '아이들은 왜 실패하는가'라는 이 책은 이런 문제의식을 60년 전부터 제기하고 있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다. 또 한가지는 1950-60년대 미국의 상황이 지금의 우리 상황과 너무나도 일치한다는 것이었다. 미국교육에 대한 존홀트의 고민은 지금의 한국교육상황과 한치도 어긋남이 없었다. 시험때문에 고민하고 아이들이 배우지 않으려 하고 심지어 배움으로부터 도망치려는 모습을 보이는 모습은 당시 미국과 무척 닮아있었다.
이 책은 1964년에 발간된 책이었다. 그것을 20년이 지난 뒤 존홀트의 생각을 다시 덧붙여 펴낸 책을 우리말로 옮겨 놓았다. 그만큼 고민의 폭과 깊이도 넓어졌다.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학교는 달라진 게 전혀 없다는 것. 교실과 학교를 바꾸고 교육을 개혁하면 바뀌리라던 소박한 희망을 벗어던지고 학교는 결코 달라지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존 홀트는 결국 공교육을 떠나 프리스쿨과 홈스쿨러 등 대안교육을 위한 방법론을 펼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오늘을 걱정하는 내 모습을 정당화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불과 한 해 전까지만 해도 아이들의 지성을 망가뜨리고 배움으로부터 도망하게 했던 내 모습이 부끄럽기도 했다. 그것이 오롯이 내 탓만은 아닌 시스템의 문제라고 여기지만, 책임을 회피할 수는 없다. 지금도 우리나라에는 열심히 아이들을 위해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들이 많다. 그러나 아이들을 위한다는 스스로의 정당함과 자만으로 아이들 처지를 생각하지 않고 자기가 무엇을 했는가에만 초점을 맞춰 실천하려는 교사들이 무척이나 많다. 물론, 나를 포함해서 말이다.
이제 우리나라 곳곳에서 교사가 무엇을 하는가가 아닌 아이들이 무엇을 배우고 있고 왜 배우려 하지 않은가에 대한 논의를 새롭게 시작해야한다는 생각이 든다. 교사가 드러나는 일보다 아이들의 배움을 찾으려 하는 교사들이 많아져야 한다. 그제야 비로소 학교도 조금씩 바뀔 수 있을 것 같다. 존홀트도 그런 말을 하고는 있지만, 학교에 대한 믿음은 거의 없는 듯 하다.
'질책'이니 '죄책감'이니 하는 말은 겁쟁이들이나 하는 말이다. 교육에 대해 논의할 때 그런 말을 빼기로 하자. 대신 '책임'이라는 말을 쓰도록 하자. 학교나 교사들이 자기가 하는 일의 결과에 책임을 지게 하자. 나는 기꺼이 책임을 졌다. 나는 학생들이 내가 가르치는 것을 배우지 않으면 그 이유를 찾는 것을 내 일로 삼았다. 이 책은 그 '왜'를 알아내고자 했던 그다지 성공하지 못한 시도의 부분적 기록이다. 이 책의 대부분을 썼던 때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 나는 그 '왜'에 대해 훨씬 더 많이 알게 됐다. ...... 미국에서 효율적이라 일컬어지는 55개의 학교에서 드러난 다섯가지 특징 가운데 두 가지가 내 관심을 끌었다. 첫째, 이 학교들은 공부를 못한다고 해서 아이들을 비난하지 않았다. 아이들의 가족이나 출신배경, 사는 동네, 태도, 신경체계 등 그 무엇도 책하지 않았다. 이 학교들은 아이들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것에 대해 변명하는 대신 그 결과에 완전히 책임을 졌다. 둘째, 이 학교들은 어떤 수업방식이 제대로 통하지 않을 때는 다른 방법을 시도했다. 다시 말해 성공적이지 못한 방법을 포기했지, 아이들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 개정판 서문 가운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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