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12교사일기/2012년 교사일기

"선생님, 봄이 다 와가나 봐요."

갈돕선생 2012. 3. 20. 13:51

점심 때 바깥에서 놀고만 있을 현준이가 교실로 들어와 불쑥 건넨 말.

"선생님, 봄이 다 와가나 봐요."

"응? 그게 무슨 말이야."

"봄이 다 온 것 같다고요."

"왜?"

"바깥에 제비꽃이 피었어요."

"그래, 정말? 벌써?"

일단, 확인은 나중으로 미루고 현준이가 건넨 말이 정말 예뻐서 칭찬을 해주었다.

"야, 현준이 정말 멋진 말 하네. 봄이 다 온 가요라고 했나?"

"네."

"그래, 정말 봄이지. 그래 제비꽃이 어디에 피었든?"

"저기요."

'벌써 피었을까?' 하는 생각과 '학교에 제비꽃이 보이는데가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짐작한 대로 제비꽃은 아니었다. 제비꽃과 닮은 색을 가진 베추니아였다. 교장선생님이 알뜰살뜰 심어놓은

꽃을 현준이는 제비꽃이라 여겼던 것.

"에이, 아니다. 제비꽃이 여기에 있을 리 없지."

"이거 제비꽃 아니예요?"

"어, 이건 베추니아야."

그 때 살짝 봄바람이 분다.

"그래도, 현준이가 봄이 다 와가요 하고 얘기해주니 정말 봄이 온 것 같다. 고마워."

현준이는 씩 웃고는 나보고 "나 버려주세요."한다.

지난 주에 한 번 말을 듣지 않아 이 놈 저 다리 밑에 버려야겠다며 작디작은 현준이를 들어 빙 돌며 던져버리는 척 했더니 딴에는 재미있었는지 오늘은 아예 나보고 또 한 번 버려 달란다. 그래서 번쩍 들어 빙빙 돌려 힘차게 던지는 척 했더니 재미있다고 난리다.

어제 즐거운 생활 시간에 봄이 오는 걸 어떻게 알 수 있는지 공부를 했더니 오늘 현준이가 그걸 까먹지 않고 내게 달려와 봄을 전해준 것 같다.

 

"선생님, 봄이 다 와가나 봐요."

꽃샘추위라 하지만 이제 봄을 맞을 이 따뜻한 날에 얼마나 예쁜 말인가?

 

그러고 보면, 아이들 말은 참으로 예쁘다. 별 거 아닌 것 같고도 재미나게 논다.

일종의 말놀이다. 자기들은 그게 말놀이인 줄도 모르고 놀지만.

지난 주에도 점심시간에 음식이 담긴 식판을 들고 현준이 앞에 앉으려 했더니 현준이가 앉기도 전에

내게 묻는다.

"선생님, 오징어 좋아해요?"

"뭐?"

"오징어 좋아하냐구요."

"왜?"

"난 오징어 싫어하거든요."

"오징어가 얼마나 맛있는데, 국 속에 담긴 오징어가 먹기 싫은 모양이구나. 마른 오징어는 좋아하고?"

"예, 마른 오징어는 맛있어요. 근데 이건 싫어요."

참 별난 녀석이다 싶어 웃는데, 조금 지나자 옆에 앉은 여자 아이들이 말놀이를 시작한다.

"야, 너 딸기 좋아해."

"어."

"야, 너 김치 좋아해."

"아니?"

"야, 너 시금치 좋아해."

"아니?"

"야, 너 치킨 좋아해."

"어."

이제는 곁으로 달려오는 1학년 아이들에게 갑자기 묻는다. 그래서 대답을 얻으면 깔깔대며 웃는다.

어린 아이들 말은 힘을 주는 무엇이 있나. 피곤하거나 지칠 때도 아이들 말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피로가 싹 가신다.

 

점심을 먹고 잠시 쉬려던 참에 현준이가 던진 말이 꼭 그랬다.

 

"선생님, 봄이 다 와가나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