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12교사일기/2012년 교사일기

목연 꽃잎에 그림 그리기

갈돕선생 2012. 4. 19. 16:48

부쩍 날이 따뜻하다 못해 덥기까지 하다. 지금은 잔뜩 흐려지고 빗방울도 떨어지지만,

오늘 오후 1시까지만 해도 따사로운 햇볕이 충남 논산의 작은 학교를 감싸고 있었다.

 

오늘은 즐거운 생활 교과 가운데 '꽃으로 꾸미는 세상'단원을 만나는 날이다.

한창 벗꽃이 만개를 하고 곳곳에서 개나리꽃 진달래꽃이 흐더러지게 피는 시절이라 제법

어울리는 단원임에는 틀림없다. 마냥 교실에만 머물러 있을 수는 없는 법.

 

나는 우리반 아이들 다섯 아이들을 학교 앞 작은 동산으로 모셨다.

아침부터 수학문제 푼다고 머리를 감쌌던 아이들이라 나들이 한다고 하니 적잖이 흥분상태로

돌입하기 시작했다. 길을 나서기 전, 보리에서 펴낸 <열두 달 자연놀이>를 펴고

나물로 할 수 있는 것들, 꽃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을 소개해 보았다.

 

모든 것을 다 만나고 할 수는 없어 오늘은 제비꽃으로 반지를 만들고 목련 꽃잎으로 그림을

그려보기로 했다. 학교 앞 동산에 마침 제비꽃이 가득하고 목련꽃이 피어 놀이하기에는 딱 알맞았다.

 

"선생님, 이거 무슨 꽃이에요."

"민들레네. 민들레 참 이쁘다. 그지."

"이거 먹을 수 있죠."

"그래, 다음 주에 우리 진달래랑 민들레랑 꽃잎 따서 전해 먹자."

"선생님, 이것도 먹는 거예요?"

"아니, 그건 질경이 풀 같은데, 전으로 해 먹기는 그래. 야, 그런데 자꾸 꽃을 먹는 거로만 볼래?"

 

보름 전 동산에 나들이를 왔을 때보다 식물들에 생기가 돈다.

살아있는 것에 생기가 돈다는 것. 그곳에 아이들과 함께 있다는 것. 참으로 행복한 순간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름 모를 무덤가 옆으로 제비꽃들이 잔뜩 보였다.

"와, 제비꽃이다."

제비꽃을 본 아이들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제비꽃이 생글생글 웃는다~ 제비꽃이 하늘 보고 웃는다~ 우예 조르크롬 피었노 음~ 참 이뿌다."

학기초에 가르쳐줬던 노래가 아이들 입에서 저절로 나온다. 흐뭇하다.

"제비꽃이 하늘을 정말 보고 있을까?"

"네, 하늘보고 있어요."

"여기는 고개 숙이고 있는데요."

"그 제비꽃은 벌 받았나 보지. 뭐."

그러자 한 녀석이 다른 노래를 부른다.

"선생님한테 선생님한테 혼나는 아이같다~"

고개숙인 해바라기 노래를 부른다.

조금 뒤 한 녀석이 소리를 지른다. 선생님 이 꽃 참 예뻐요.

녀석들보다 훨씬 키가 큰 나무 위에서 핀 목련을 한 녀석이 발견한 것이다.

"야, 민기가 목련을 찾았구나. 잘 됐다. 나중에 꽃 잎 따서 그림도 그려보자."

 

이래저래 동산을 한 바퀴 거치고 나서 아이들과 제비꽃으로 반지도 만들고

교실로 목련꽃도 가지고 와서 그림도 그려 보았다. 아직 여리고 여린 제비꽃으로

반지를 만드는 일은 쉽지 않았다. 쉽게 줄기가 꺾기고 부러진다. 꽃으로 괜한 짓 한 것 아닌가

싶기도 했지만, 아이들이 즐거워 하니......

책에는 목련꽃에 손톱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다고 하나 그렇게 쉽지 않았다.

뭉툭한 연필로 그림을 그리니 조금 나았다. 어렵게 하나씩 그림을 그려보며 꽃잎과 아이들이

그나마 친해질 수 있는 시간이었다.

 

즐거웠던 꽃 나들이 시간을 보내고 '예쁘지 않은 꽃은 없다'를 함께 불러 보았다.

노래를 다 부르고 난 뒤, 한 녀석이 한 마디 한다.

"선생님, 예쁘지 않은 꽃 있는데요. 벌레 잡아먹는 꽃 있잖아요. 그거는 못 생겼어요."

"그래, 선생님은 그꽃도 예쁘던데. 너희들처럼 다 예쁘던데."

"그래도 예쁘지 않은 꽃은 있어요."

 

이 순간에 난 더 이상 말을 못했다. 솔직히 내 생각에도 예쁘지 않은 꽃이 있기 때문이다.

이 노랫말에 담긴 철학을 구태여 아이들에게 말로 강제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예쁘든 예쁘지 않든 꽃을 소중히 여기듯 우리 반 아이들 모두를 사랑하는 것 사실이니까.

이제 내일은 개나리 꽃을 만나러 간다. 아쉬운 건 학교 주변으로 진달래를 볼 수 없다는 것.

조금 더 멀리 나가볼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