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쓸 그날에/아이들 삶글읽기

안녕, 비둘기야~

갈돕선생 2009. 6. 22. 10:20

이오덕 선생님의 '아이들 삶을 가꾸는 글쓰기'라는 이름은 아이들의 행복한 삶을 바라는 많은 교사들에게 훌륭한 지침서 역할을 해 왔다. 단순히 글쓰기 지도라는 좁은 의미를 떠나 교사의 성장까지도 이끌어 냈던 이오덕 '글쓰기' 철학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그러나 아직도 남아 있는 아니 더 확대되고 있는 일선 학교와 교육청의 각종 '글짓기'대회와 기능 위주의 글짓기 지도, 삶과 거리가 먼 논술대회때문에 아이들의 글은 점점 삶과 멀어지고만 있다. 근본적인 사회변화 없이 교육의 변화를 기대하기란 참으로 어렵게만 보인다.

 

그래서 그런지, 아이들은 글쓰기를 매우 싫어한다. 나름 글쓰기의 맛을 느끼게 하는 지도과정을 거쳐도 전보다 나아졌을 뿐인지 글쓰기 자체를 즐기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거나 일 년 안에 그 단계까지 가기는 버겁기만 하다. 그것은 아마도 글쓰기가 아이들 삶속으로 들어가기에는 걸림돌이 늘어만 가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이 무엇을 즐기고 몰입을 하기 위해서는 삶의 여유가 매우 중요하다. 생각할 여유가 없는 사람에게 즐기는 몰입은 상상할 수도 없다. 학력이라는 올가미 때문에 이곳 시골 학교 아이들도 점점 방과후에도 자유롭게 뛰어놀 시간이 줄어들고만 있다. 해야할 일은 점점 많아지고 여유가 없어진 아이들의 삶은 단순해지고 글쓰기도 그저 힘겨운 노동으로만 여긴다.

 

갈수록 해야할 일과 시간의 여유가 사라진 아이들에게 배움은 지겨운 것이고 고통이며 빨리 벗어나고 싶은 속박 그 이상으로 자리잡고 있다. 글쓰기도 예외가 아니다. 아이들이 글쓰기를 싫어하는 까닭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큰 까닭은 우리나라 교육과 학교, 학급에 진정한 '배움'이라는 요소가 빠져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들에게 삶을 가꾸는 글쓰기를 가르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지난 17년 동안 나를 거쳐간 아이들은 많은 글들을 써야 했다. 그 가운데 기꺼이 즐겁게 글을 쓰는 아이는 열 손가락도 되지 않는다. 자기 삶을 잘 드러내 글을 쓴다고 칭찬을 받는 아이들 조차도 정작 글을 쓰지 않는다고 하면 매우 기뻐했다. 어쩌면 그 아이들은 글쓰기가 싫었던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오히려 아이들 삶과 거리가 먼 학교로 부터 아니 배움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욕구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오늘도 아이들 삶을 가꿔주기 위해, 아이들 스스로 자기 삶을 돌아보게 하기 위해 글을 쓰게 한다. 힘겨운 삶 속에서도 자기 만의 삶을 드러내는 아이들이 언젠가 이 과정이 따뜻한 배움의 과정이었음을 느끼게 하고 싶어서다. 생각할 여유도 시간의 여유도 없는 아이들이지만, 그 틈바구니 속에서도 자기 삶을 만들어나가는 아이들 모습은 대견하면서도 한편 측은하기도 하다. 그 아이들 삶 곁에서 그 삶을 지켜주고 돌봐주는 일에 글쓰기는 내 학급운영에서 큰 몫을 차지 한다. 오늘 하은이의 글을 보면서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안녕, 비둘기야~ | 반곡초 6학년 소하은

날짜: 2009년 6월 21일

날씨: 더운데다 모기가 아주 많음.

 

아침에 우리 할머니가 비둘기 한 마리를 잡아오셨다. 할머니는 우리 집으로 올라오는 계단 손잡이에 얇은 밧줄로 오른쪽 비둘기의 오른쪽 다리를 묶어 두셨다.

 

"할머니, 이거 어떻게 잡았어요?"

"밭에 있길래 잡았지."

"이놈, 늙어서 죽으면 저 밭에다 매달아야지."

"네? 죽은 걸 단다고요?"

"그람, 새 놈들은 오지 말라고. 밭에 와서 콩 쪼아먹지 말라고."

"그럼, 이거 죽을 때까지 키우는 거예요?"

"그람, 그냥 죽여버려?"

"아니요? 근데 언제 죽냐?"

"지가 죽고 싶을 때 죽겄지."

 

묶여 있는 비둘기는 고개를 요리조리 돌려가며 두리번 거렸다. 낯선 곳이라 그런가 겁 먹은 눈이었다. 나는 그 비둘기를 뚤어지게 쳐다 보았다. 안녕, 비둘기야~

 

 

 

'다시 쓸 그날에 > 아이들 삶글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할머니 손은 약손/별꼴 다 있네  (0) 2009.07.17
김칫국 끓이기  (0) 2009.07.14
절대 사절 할 것이다  (0) 2009.07.09
시골 내음 물씬한 아이들 글  (0) 2009.07.07
잘가, 비둘기야~  (0) 2009.0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