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쓸 그날에/아이들 삶글읽기

할머니 손은 약손/별꼴 다 있네

갈돕선생 2009. 7. 17. 10:44

요즘 우리반 준이 글에 푹 빠져 있다. 바쁜 부모님들때문에 늘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지내는 준이의 일기는 늘 그 일상을 실감나게 보여주곤 한다. 사는 게 이런 가 싶은 게 기분이 좋아지는 글이다. 그래도 오늘도 준이글을 올려 본다.

 

7월 15일 수요일 날씨 어제 비가 오다가 그쳐서 안개가 낌.

할머니 손은 약손 | 홍준

 

오늘 저녁 쯤에 내 동생이 설사를 했다. 그래서 그런지 배가 아프다며 낑낑 대고 있었다. 나는 동생을 불러 할머니한테 가보라고 했다. 같이 가자길래 같이 갔다. 부엌에 가니 할머니께서는 마늘껍질을 까고 계셨다. 우리 할머니는 20년 쯤에 중풍에 걸려서 왼팔 전체를 쓰지 못하신다. 할머니께서는 남은 마늘을 다 까시고 손을 씻고 나서

"소정이 어이 한 번 보자. 할머니 손이 약손인겨."

할머니께서는 동생 티셔츠를 배 위로 올린 후 오른 손을 척하고 올리며 손으로 동생 배를 원 그리듯이 저었다.

"할머니! 근디 할머니 손이 왜 약손이에요?"

"옛날부터 할머니 손이 약손이라 했는디, 할머니들이 애기들한테 배에다 손을 얹어서 저었는디, 신기하게 안 아파해서 그런 말이 나왔지, 뭐~"

"그럼, 할머니 손도 약손이겠네요."

"그건 농담이지 할머니 손이 약손인지 어떻게 알것어?" 사람들이 그냥 장난 삼어 한 말이겄지."

"그거 참 신기하네요. 할머니 손이 약손?"

진짜 신기하게도 할머니께서 동생 배를 저어주었는데 동생이 배가 안 아프다고 하였다. 내 동생이 거짓말을 하는 걸까? 아니면 진짜 일까? 할머니 손은 약손이란 말은 참 미스테리한 것 같다.

 

7월 16일 목요일 오전 오후에 비가 조금식 내림

별 꼴 다 있네 | 홍준

오늘오후 5시쯤이었을 것이다. 할머니와 동생은 뭔가를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나도 신기해서 같이 봤는데 정말 이상하고 신기했다. 닭이 지멋대로 닭장에서 나와 우리집 백구한테 덤비는 것이었다. 백구는 짖고 닭은 부리로 찍었다. 할머니께서는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참 나 살다보니 별 꼴이 다 있네."

"할머니, 닭이 어떡해서 닭장에서 나왔어요? 난 그게 신기한데."

"그니께 말이여~ 별 꼴이여~"

"근데 저거 암탉인가 수탉이인가 모르겠어요."

"아, 보면 몰라? 수컷이잖여~ 아직 저 놈이 새끼라 그런디 크면 목젖이 내려서 꼬끼오 하고 울을겨~"

"닭이 수탉이라서 겁도 없이 백구한테 덤볐나?"

"그럴 수도 있겄지. 나도 닭이 개한테 덤비는 건 처음보는 겨. 고양이랑 싸우는 건 봤어도."

우리 할머니도 처음 보는 일이라고 하신다. 그만큼 신기한 일이거 같다. 달깅 부리로 무섭게 백구를 쪼아대니 백구는 못이긴 듯 집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닭이 닭장에 있는 사료를 안 먹고 백구 사료를 먹고 있었다. 이건 진짜 별꼴이었다. 닭이 옛날에는 개였다가 닭으로 다시 태어난 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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